[김성호 세상보기]장군 보좌일꾼과 회장 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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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군의 보좌일꾼과 명예회장의 비서들은 양인의 회동을 마련하느라 몹시 바빴다.

보좌일꾼은 위원장 담당비서 등이고, 비서들은 회장.부회장.사장 등이다.

10.30회동의 전날을 마감함에 있어 그들은 먼저 양인의 호칭문제부터 신경써야 했다.

"아시다시피 지도자동지는 인민군 대원수요. 그러니 그냥 장군이라 부르시오. 귀측의 호칭은, 혹시 왕회장이라고…. " "그건 애칭이지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공식 직함인 명예회장이라고 부르거나 연장자라는 점을 감안, 그냥 선생이라고 불러도 좋소. "

"그렇게 합시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대화는 우선 이 조선 땅에 석유가 나온다는 기쁜 소식부터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시다. "

"그런 허황된 얘기를 나누면 이번 회동의 진실성을 누가 믿겠소. 우리도 석유를 얻으려고 포항 근교부터 대륙붕 6, 7광구까지 안 파본 데가 없소. 그러나 결론은 우리나라엔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

"어허 성급하긴, 우리의 지질학적 구조는 그쪽과 달라요. 지금 한창 석유를 퍼내고 있는 중국 발해만 (渤海灣) 유전이 바다 밑으로 평안도까지 쭉 뻗어 있다 이겁니다. 평양시가 기름 위에 둥둥 떠 있는 형국이라니깐요. 그러니까 마음 놓고 파보고 기름이 나오면 파이프로 연결해서 가져 가시오. "

" (아 이건 양약인가 독약인가. ) 그건 나중에 의논하기로 하고, 귀측은 이번 회동에 어떤 원칙으로 임하고 있습니까. "

"우선 모든 경협사업은 고부가가치 (高附加價値) 를 가져 와야 합니다.

이 원칙에 대해선 이미 남측의 모 인사가 꿰뚫어 보고 있습디다만 귀측도 이 원칙에 동의하면 잡담 제하고 6년 안에 9억4천2백만달러를 내놔야 합니다.

또 모든 경협지역의 불조차 (不租借) 원칙과 당국 배제의 원칙이 있습니다.

불조차원칙은 금강산이건 서해안 공업지구건 마치 귀측이 그 땅을 대여라도 받은 듯 행세하려단 큰 코 다친다는 말입니다.

당국 배제의 원칙은 남조선 정부 당국이 우리 대화에 자꾸 끼어들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1백여 나라와 수백개 기업을 상대하고 있으며 남조선 정부는 그 가운데 하나, 즉 '원 오브 뎀 (one of them)' 일 뿐입니다.

(사실은 귀측도 그렇지만…. )"

"우리 쪽에도 정경분리의 원칙이 있으니 염려마십시오. " "오 그래요. 북남의 노선이 기가 막히게 궁합이 맞네요. 그러면 귀측의 원칙은 무엇이오. " "우리에게는 응능 (應能) 부담의 원칙이 있소. 금강산 구경은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만 하라는 것이오. 많게는 2천4백달러, 적게는 8백달러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1인당 평균 관광비용이 1천달러라고 쳐도 귀측에 지불하는 돈에는 차질이 없을 겁니다. 1년에 50만명이 구경하면 5억달러, 6년이면 30억달러가 되는 것 아니겠소. "

"하 그것 참 (무르팍을 탁 치고 싶네!) 그런데 한가지 충고한다면 만약 너무 비싸다는 여론이 일어나면 냄비언론을 통해 다시 한번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거요. "

"그런데, 엊그제까지 잠수정을 침투시키던 귀측이 갑자기 남북경협의 물꼬를 트려는 이유가 뭐요? 바깥에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거요?" "우리의 갈 길이 파멸적 붕괴나 자살적 전면도발 밖에 없다는 엉터리 예측을 일소하려는거요. 그리고 우리가 드디어 덩샤오핑 (鄧小平) 식 개방보다 백배 더 조심스런 개방을 시작했다는 신호를 보내려는거요. 귀측의 속셈은?"

"남북경협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오. " "정말 그것 뿐이오?" "그렇소. 혹시 우리 쪽 당국에 무슨 귀띔할 말이라도?"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소. " "귀측은 '우리가 입을 열면 여 (與) 고 야 (野) 고 모두 함정에 빠진다' 고 했는데 도대체 우리측 누구의 약점을 잡고 있소? 암시라도 받읍시다. "

"어허 안된다니까. 에이, 참…. "

김성호(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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