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기금 운용 이래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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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정감사를 통해 연일 드러나고 있는 각종 연.기금 (年.基金) 의 운영부실 실태가 충격적이다.

정부예산보다 훨씬 많은 돈들이 정부 각 부처의 '쌈짓돈' 처럼 국민감시 밖에서 집행되고 있다.

'보는 사람이 임자' 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정부가 조성.관리하는 기금은 공공기금 38개와 기타기금 38개 등 모두 76개로 기금조성액은 올해까지 총 2백10조원에 이른다.

올해 운영되는 기금규모만 1백26조원으로 정부예산의 1.6배에 달한다.

이는 각 부처가 국회심의를 받는 예산을 통해 재정지출을 하기보다는 아무 간섭 없이 집행할 수 있는 기금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38개 공공기금만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받아 집행될 뿐 여타기금은 중앙관서장의 승인을 받으면 그만이고, 국회 보고의무도 없다.

조성된 기금이 어떤 돈인가.

정부출연이나 준 (準) 조세성격으로 거둬들인 국민의 돈이다.

이것이 '예산 밖의 돈' 으로 자기 주머니돈처럼 쓰이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게다가 운영미숙과 비효율 등으로 기금을 불리기는커녕 천문학적인 손실로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온 국민이 노후대책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의 경우 정부가 적립된 기금의 70%를 시중금리보다 훨씬 낮은 이자율로 끌어다 썼다.

국민.공무원.사학연금 등 3대연금기금의 경우 정부가 증시부양책으로 강요한 주식투자로 1조8천억원을 날렸다고 한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급여수준 인하와 보험료율 인상이 속속 예고되고 있다.

4대공제회 (교원.지방행정.경찰.군인) 의 운영부실 또한 이에 못지않은 중증 (重症) 이다.

군인연금의 경우 이미 바닥이 나 군인연금특별회계에 손을 벌리는 처지다.

부실운영의 가장 큰 이유는 기금관리자의 자질부족에 있다.

정치권이나 관련중앙부처의 '자리보장' 용으로 이용되면서 전문성이나 경영효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민연금의 역대이사장 7명은 정치권이나 중앙부처 퇴직관리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다.

주식.금융상품에의 투자로 돈을 불리는 데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

이는 아마추어 '철밥통' 들의 능력 밖이다.

무리한 주식투자를 강요하는 정부당국의 고압적.자의적 행태, 현직과 전직간의 서로 봐주기, '눈 가리고 아웅식' 자체감사의 철밥통문화 속에 재원은 이중삼중으로 새고 있다.

가입자들이 받게 될 불이익과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이들 연.기금의 근본적인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차제에 이들 '예산 밖의 돈' 을 최대한 예산에 흡수하고,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돈들은 집행과 관리에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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