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외로움 즐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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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기자 생활 때 생긴 버릇인데,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걸 좋아한다. 넓게 보라고 뒷좌석을 주겠다는 매표원의 친절을 굳이 거부하고, 앞에서 서너 번째 자리에 콕 박혀 앉는다. 그러면 앞에 사람들 모습 보지 않고 스크린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된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담그고 스크린에 눈과 귀를 고정해 그 속에 들어가기라도 할 듯 바라보는 느낌이 좋다.

나는 이게 익숙한데 주변 사람들은 희한하게 본다. “일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면 그래도 안됐다고나 말해준다. 그런데 사실 영화뿐이 아니다. 콘서트도 운동경기도 혼자 보러 간다. 좋아하는 평양냉면 같은 걸 먹을 때도 혼자 간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혼자 뭘 하게 된 건 대부분 지독한 ‘귀차니즘’ 때문이다. 누가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면 어떤 영화를 고를지, 시간 약속은 언제로 할지 정하는 것도 귀찮고, 콘서트도 좋아하는 뮤지션 취향을 맞춰야 하고, 운동경기는 응원하는 팀을 맞춰야 하며 평양냉면 같은 건 매니어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혼자 가는 것이다. 동행자의 눈치를 보는 일도 편치 않다. 옆자리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이 재미는 있어 하는지, 혹시 졸지는 않는지, 음식점이면 맛은 있어 하는지 신경쓰다 보면 거기에 힘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그 외로운 분위기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혼자 보러 간 극장의 영화나 전시장의 그림들 앞에 마주 서 있으면 그 속의 기운들이 뿜어져 나와 마치 샤워라도 하는 기분이다. 마치 숲 속에서 ‘삼림욕’을 하듯 ‘그림욕’이나 ‘영화욕’을 하는 셈인데, 이건 반드시 혼자 작품들과 마주할 때만 느껴진다.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는 불가능하다. 나 혼자 만나는 작품과 무대와 경기는 여럿이 함께 할 때는 깨달을 수 없는 온전한 만남을 선물한다. 냉면 역시 혼자 묵묵히 먹을 때 혀에 감기는 메밀과 속시원한 육수의 맛은, 떠들며 술잔 기울이며 후루룩 먹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깊음과 세심함이 있다.

얼마 전 사진전 ‘오딧세이’ 전시회에 참가한 사진 작가들에게 “사진을 잘 찍고 싶어하는 아마추어들이 주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 그랬더니 “동호회 활동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의외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일 때야 같이 정보도 교환하고 격려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혼자 대상과 혹은 사진과 외롭게 맞서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구본창 작가는 그걸 “사진 속에 담길 사물과 나의 대화”라고 표현했고, 고명근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을 찍고 그걸 자기 혼자 검토하는 과정이 “곧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축소해 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작가가 되고 싶어 학원에 나갔다가 지망생 친구들과 교제만 열심히 한 뒤 ‘역시 난 소질이 없어’ 하고 쉽게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작가가 안 됐던 이유는 아마도 자질 부족보다는 하얀 모니터와 대면하고 그 외로움을 뚫고 맞서서 이겨내는 그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무엇이든 제대로 얻고자 하면 혼자서 묵묵히, 외로움에 맞서며 혹은 그걸 즐기며 견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이 사소한 음식의 맛이든, 한 편의 영화든, 스포츠 경기의 짜릿함이든 혹은 자신이 바라는 성공의 목표점이든. 좀 더 외로워져야겠다.

이윤정 TV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