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더불어 사는 생활방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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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한 신문사와 예술의전당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50년 우리들의 이야기' 전시자료 마지막 부분인 '우리들의 성적표' 에는 우리들의 인간다운 삶의 질이 세계 1백74개국 중 제30위로 랭크됐었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8위).홍콩 (25위).싱가포르 (28위)에 이어 네번째며, 남녀별 균형발전 (교육.소득 등) 측면에서는 더 뒤로 밀려 37위 (지난해 35위) 였고, 여성의 사회진출도 (공직.경영직.전문기술직 등) 는 조사 대상국 중 83위에 그쳤다.

이는 우리들의 생활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충격적이다.

이승만정권 수립 때부터 민족을 위한 정치이념이냐, 정치이념을 위한 민족이냐는 두 갈래 길에서 후자를 택한 그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 분단된 민족으로 친일파 기용과 인의 장막으로 민주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원죄 (原罪) 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냉전분단 전쟁 폐허속에서 4.19혁명에 의한 민주부활의 싹마저 짓밟고 '하면 된다' 는 5.16군사혁명의 신화인 안보와 건설을 위해 인간 삶의 질따위는 무시되다 유신정치로 그 역사적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12.12와 5.17 군부쿠데타는 5.16의 하면 된다를 넘어서 '한다면 한다' 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정을 무시한 채 권력을 잡으면 자기들의 세상이라는 식이었다.

4반세기 군부독재는 남북분단에 설상가상으로 동서분열을 가져왔고 우리들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질은 권력 우상과 배금 우상의 노예방식이 돼 버렸다.

정도 (正道) 의 정치가 아닌 통치차원의 정치가 우리 삶의 질을 굴종의 노예생활 방식으로 전락시켰다.

더불어 함께 사는 인간다운 삶의 질이 아니라 군사문화와 정글에나 있는 약육강식 힘의 논리 생활방식뿐이었다.

배금주의.금권만능주의 악신인 금력은 자본시대의 우상이며 요지경속의 도깨비 방망이였다.

그리스신화 속의 마이더스처럼 그 손길이 닿는 모든 것이 돈으로 변해버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것에서 인간다운 생명과 삶의 질을 모두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이 시대에 무너져야 하는 건 물질만능주의고 성장의 신화다.

실제로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에 성장의 신화는 힘이 없어 거기에 기대어 있는 삶들을 무너지게 한다.

지금은 그동안 우리 시대의 문화적 불운이었던 물질만능주의를 거둬낼 수 있는 기회다.

우리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주범중에는 대한민국 50년 동안 우리의 교육정책도 큰 몫을 차지한다.

입시 생지옥으로 버려지는 70% 아이들. 10대 후반에 치르는 단 한번의 입시전쟁이 일평생 자신들의 운명과 삶의 질을 결정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한마디로 경쟁의 희생물만 양산해 내는 우리 교육정책은 어느 선진국 같이 엘리트 지적그룹의 지적 산물을 국민이 함께 나누기보다는 명문대 출신들이 온 국민에게 경제적 위기의 고통분담만 지게 한 것밖에는 남은 게 없다.

미.유럽 등 선진국들은 형체없는 정보사회와 지적사회로 개편하며 삶의 질을 전환시켜 나아가는 교육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무한경쟁 시대 세계화는 공존공생의 모두가 이기고 함께 사는 윈윈 (Win - Win) 삶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인 평면사회나 산업사회의 입체사회 생활방식이다.

이제는 분단사상과 이념의 좌 (左) 도 아니고 우 (右) 도 아닌 이념을 넘어서고, 개혁도 혁명도 아니고 수구도 아닌 건전한 기본 상식이 통하는 그런 사회와 나라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 50년, 우리는 남북과 동서와 학벌 계층간에 편가르기로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선택의 여지가 도무지 없는 삶을 살아왔다.

다만 생존만을 가능케한 정치.경제.언론.교육이 우리사회의 모습이었다.

이젠 우리도 삶의 질을 높이는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우리 사회에 인격적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인격적 공동체주의는 한 시대와 사회에서 연대성을 갖는 모두가 인격적 가능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인격적 공동체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인격적 공동체의 공동선의 가치관으로 우리 생활 방식을 바꾸어 나가야만 한다.

나만 좋으면 그만인 사회는 사람이 사람에게 늑대일 수밖에 없는 사회다.

예수께서도 하느님나라 인격 공동체가 네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국민 각자가 자기 자신의 마음먹기에 따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여유를 갖는 생활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고통분담의 십자가가 감미롭고 가벼운 사랑의 짐이 되게 해야겠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비결을 배우자.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안충석(사당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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