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손씻기, 잘 하자는데 잘 안 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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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선남선녀의 만남을 주선한 덕에 서울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특급호텔 일식당에서 값비싼 회를 대접받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이후 밤새 울렁거림과 구토에 시달려야 했다.

‘혹시 특급호텔에서도 상한 회를 공급한 걸까? 아니면 손도 제대로 안 씻은 조리사가 요리를 했던 걸까?’ 이런 의구심은 다음날 식사를 함께 했던 친구로부터의 전화 한 통으로 풀렸다.

그녀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토사곽란에 시달렸다고 알려준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특급호텔의 성찬이 범인이었던 것이다.

고온다습한 여름엔 각종 미생물이 번창하면서 감염병이 극성을 부린다.

가장 흔한 원인은 바닷물에 사는 비브리오균이다. 해수(海水)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균이 급속히 증식하기 때문이다. 자칫 오염된 어패류를 먹을 경우, 건강한 사람은 복통·구토·설사 등을 초래하는 장염에, 간경변·만성신부전·당뇨병 등 지병이 있는 사람은 치사율이 50%나 되는 패혈증에 빠질 위험이 있다.

다행히 70도 이상 고온에서 15분 이상 끓이면 균은 박멸된다.

살모넬라 식중독도 골칫거리다. 소·돼지·닭 등 포유동물의 창자 속에 사는 살모넬라균은 음식 보관 과정에서 급속히 증식된다. 따라서 여름철 음식 재료는 물론 조리된 음식도 상온에 방치하지 말고 ‘매번’ ‘즉시’ 냉장 보관해야 한다.

어린이에게 빈발하는 이질은 감염된 음식은 물론 환자와 접촉해도 쉽게 전염된다. 식전이나 용변 후에 매번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여름철 감염병은 손 씻기를 생활화하면서 음식을 끓이고 익혀 먹으면 걱정할 게 없다. 문제는 실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고급 식사를 대접하고도 우리에게 미안함을 표시해야 했던 노신사의 한탄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얼마 전 ○○골프장-소위 말하는 명품 골프장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주방 직원이 대변을 본 뒤 손도 안 씻고 급히 나가는 걸 목격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화장실에서 나온 뒤 누가 보면 손 씻고 안 보면 안 씻고 그냥 나간다니까요·”

맞는 말이다. 손 씻기 원칙 하나만 제대로 지켜도 장염은 물론 감기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을 70%나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보건복지가족부 등은 수시로 홍보물도 배포하고 공익광고도 한다. 그래도 고급 식당 종사자 중에서도 이 원칙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원인은 어릴 때부터 학교 보건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탓이다.

최근 서울의 10개 초·중·고등학생 1383명을 대상으로 17시간의 보건(건강)교육을 실시한 뒤 효과를 분석한 인제대 의대 강재헌 교수는 “보건교육을 받은 학생은 이전보다 건강 관련 지식과 태도· 행동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개선됐고, 이런 효과는 어릴수록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예컨대 초등학생 때부터 보건교육을 통해 손 씻기의 중요성을 제대로 배운다면 미래의 대한민국 성인층은 남이 안 보더라도 용변 후엔 누구나 손을 씻을 것이다.

진정 전염병과 비만·술·담배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학교에서 매주 1시간씩 보건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미래 동량들의 평생 건강을 위해 학교 보건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절실해 보인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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