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대표, 정수장학회 손을 놓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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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때아닌 정수장학회 논란이 일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른바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이란 기구를 만들었다. 당초 기업인이 만든 '부일장학회'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 장학회'로 바뀐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열린우리당이 "정쟁 차원의 조사가 아니다"고 주장하나 그 목적이 뭔지는 뻔하다. 강압에 의한 장학회 포기라는 점을 부각해 현 이사장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자는 의도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나라 살림은 엉망이고 민심은 폭발직전이다. 이런 판국에 야당 대표를 흠집 내려는 정치적 꼼수나 부리니 여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논란의 당사자인 박 대표도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박 대표로서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정치공세가 억울할 것이다. 이사장 직 유지에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수장학회가 문제가 되는 근본 이유는 설립자인 김지태씨의 의사에 반하는 장학회 포기가 무리하게 이뤄졌다는 점에 있다. 김씨의 유족이 수십년간 이의를 제기하고,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거론됐다. 그런 만큼 어떻게 조사를 해도 장학회 포기가 자유의사였다는 결론은 나오기 힘들다. 이번 파동을 넘긴다고 논란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박 대표로서는 고려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 누가 될지 모른다고 우려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현명하다. 국민은 이미 박 대통령의 공(功)은 물론 과(過)에 대해 자세히 안다. 특히 박 대표가 지금 개인 박근혜가 아니라 야당의 대표라는 어려운 자리를 맡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공격은 순전히 박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겨냥한 기획공격이다. 차제에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문제의 장학회와 관련을 끊는 한 차원 높은 결단을 먼저 내림으로써 쓸데없는 시비를 차단할 수 있다. 박 대표가 장학회의 이사장을 맡느냐 안 맡느냐가 국민으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결단을 통해 정치인 박근혜는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며, 그가 하고자 하는 투쟁도 명분과 힘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