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바둑]위빈-이성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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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성재, 8강 진출

총보 (1~271) =바둑판 위의 가치는 단순하다.

가장 능률적인 수는 최고의 선 (善) 이며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바둑이 삶의 축소판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과 다른 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제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성재5단의 105를 보자. 이 수는 위쪽 백의 미생마를 응징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李5단은 105마저 선수한 뒤 결행하려 하다가 106이라는 한수로 기회를 잃고 말았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하루만 먼저 팔았더라면 하고 탄식하는 투자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위빈9단의 134는 또 어떤가.

이 수는 가장 냉정하게 둔다면 조금 비겁하지만 '참고도' 백1로 살아둬야 했다.

하지만 위빈은 9단까지 오른 일류기사로서 젊은 후배에게 이처럼 추위를 탄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134까지만 선수하고 (이 수로 체면치레를 하고) 그 다음 '참고도' 처럼 꼬리를 내리려 했던 것인데 바로 그 순간 135의 칼침이 들어와 바둑이 혼전에 휩싸이고 말았다.

기회는 찰나에 지나가고 아쉬움은 항시 남는다.

이것이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고 무엇인가.

최후에 1분 초읽기의 생지옥으로 몰린 위빈은 그때 살아두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당당히 세계 8강 대열에 오른 이성재5단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65=55, 189.195.268=153, 192.258=186, 215=142, 263=62, 267=92, 269=257, 271=264) . 271수 끝, 흑 2집반 승.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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