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미시 세계사]전직 대통령 보고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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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33면

미국의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1929~33년 재임)는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난 속에 연임하는 데 실패했다. 명예 회복의 기회가 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식량지원위원장을 지냈던 그에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점령국 독일의 식량 사정을 파악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독일을 시찰하고 돌아온 그는 ‘8~18세 성장기 학생들의 영양 상태가 가장 큰 문제’라며 학교 급식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독일인들은 이를 ‘후버슈파이중(후버의 급식)’이라고 부르며 고마워했다.

후버는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인 47∼49년,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이던 53~55년, 두 차례에 걸쳐 행정개혁위원장을 맡았다. 낭비와 비효율을 걷어 내는 방안을 건의한 이 조직은 ‘후버 위원회’라고 불렸다. 49년 공화당 소속 뉴욕 주지사 토머스 듀이로부터 공석이 된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정치 일선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퇴임한 지 31년7개월이 지난 64년 10월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중 최장 생존 기록이다. 그는 그 긴 세월을 국가에 대한 봉사와 저술 활동으로 보람차게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69~74년 재임)은 지금으로부터 딱 35년 전인 74년 8월 9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했다. 그는 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다시 방문하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방문은 ‘시민 닉슨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심지어 공화당 내에서도 비난을 받았다. 그는 귀국 뒤 정부가 참조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보고서를 백악관에 조용히 제출했다. 그 뒤 중국을 네 차례 더 방문했지만 행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주는 공개적인 발언은 삼갔다.

그는 미국 외교의 취약지였던 중동 지역을 자주 찾았다. 81년 10월 이집트의 안와르 알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미국 정부 조문특사로 전직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와 함께 나란히 영결식장에 섰다. 결정적인 활약은 86년 7월 모스크바 방문 뒤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대한 인물평 등을 담은 장문의 보고서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의 성향과 생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런 활약으로 그는 갤럽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10인’에 들 정도로 신뢰를 회복했다. 전기작가 스티븐 앰브로스는 그를 “항상 시끄러운 일을 만드는 원로 정치인”이라고 불렀지만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한 시민으로서 백악관에 자신의 의견을 조용히 전달했을 뿐이다.

북한에 억류됐던 두 여기자의 석방을 위해 평양에 다녀온 빌 클린턴도 이런 선배 전직 대통령들의 관례에 따라 백악관에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그가 내놓을 보고서는 한반도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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