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쟁탈전…각국 신병인도·조사참여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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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영국에서 체포된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대해 당초 체포를 요구했던 스페인에 이어 스웨덴.스위스.프랑스 등도 신병인도를 요구하거나 조사참여를 요청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피노체트에 대한 국제 쟁탈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피노체트 집권시 칠레에 거주하던 자기나라 국민들이 피노체트에 의해 살해됐거나 칠레로부터 망명한 사람들이 피노체트를 대량학살혐의로 고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독재자 피노체트에 의해 외국인이 희생됐다는 자료가 공표되거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선 '희생됐다' 는 가족들의 개별 소송이 줄을 잇고 있어 그 처리를 위해 피노체트에 대한 나름대로의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스위스의 베르나르 베르토사 판사는 26일 "스위스 국적 알렉세이 자카르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는 데 필요한 법적 요건이 갖춰졌다.

스위스 사법당국이 곧 영국에 피노체트의 신병인도를 요청할 예정" 이라고 밝혔다.

자카르 가족들은 지난 97년 칠레시민권도 갖고 있던 자카르가 칠레 및 아르헨티나 경찰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된 뒤 실종된 사건에 피노체트가 관련됐다며 지난 22일 사법당국에 고발했었다.

프랑스인 희생자 3명의 변호사 윌리암 부르동도 이날 "프랑스인을 살해한 피노체트를 프랑스 법정에 세워야 한다" 며 즉각적인 신병인도를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가족들이 프랑스 당국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대통령 개인비서의 아들이었던 엔리케 안드레스 마리아 로페르 콩트르라 (당시 20세) 는 73년 칠레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

스웨덴의 안나 린드 외무장관은 이날 "피노체트 조사가 끝날 때까지 그를 계속 구금해야 한다" 고 영국에 요청했다.

이번 조치는 스웨덴 거주 칠레 망명자들이 당국에 피노체트를 살인 등의 혐의로 고발함으로써 취해진 것이란 설명이다.

정작 영국은 '심의중' 이란 이유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칠레의 피노체트 지지세력은 "영국여왕도 포클랜드 전쟁 등에서 다른 나라 국민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될 수 있다" 며 영국을 은근히 협박하고 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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