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기업들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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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 국정감사자료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정부산하기관들의 방만한 경영행태가 실로 충격적이다.

구조조정에 가장 앞장서야 할 공기업들이 눈가림식 인원조정으로 외형적인 숫자 불리기에만 급급하고, 일부는 최고 5억~6억원대의 퇴직금까지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투자기관들은 구조조정과정에서 하위직이나 잡급직 등 퇴출시키기 쉬운 대상들만 골라 숫자를 불려놓고 실제 인건비는 더 늘렸다고 한다.

27개 정부투자기관들이 지난해부터 지난 4월까지 모두 6천억원 가까운 돈을 명예퇴직금으로 얹어주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의지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뿐만 아니다.

40개 공기업의 유급휴가는 대부분 법정일수를 초과하고 있고, 산업은행의 20년근무 직원의 휴무일은 연간 1백26일에 이른다고 한다.

연월차수당까지 미리 지급하는 곳도 적발됐다.

또 상부에는 면직보고를 해놓고 계속 근무시키는 공기업도 있다고 한다.

'놀고 먹는 공기업' '갈라먹기식 경영' 으로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공기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업기관이다.

경쟁이 없고, 독과점을 정부가 보장해주고 있는데도 대부분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경영실적이 형편없고 정부가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4대 개혁 가운데 공공부문 개혁으로 솔선수범을 다짐했건만 지금까지 겨우 임직원 일부만 정리하고 임금과 퇴직금 지급체계 등 실질적 개혁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금융과 기업 등 민간부문은 시장경제의 원리까지 훼손당하며 강도 높은 고통분담을 요구받고 있는데 공공부문 개혁이 모범은커녕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꼴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공금 유용과 특정업자와의 결탁 혐의로 공기업 사장이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특정업체에 빚보증을 과다하게 서줬다가 은행에 6백여억원을 대신 물어준 사례도 드러나고 있다.

이같은 방만한 경영에는 물론 정부의 직무유기도 한몫 한다.

후일 낙하산인사에 대한 기대 때문에 현직에 있을 때 감독을 게을리하거나 불건전경영을 방치하는 경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이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고, 감사원과 검찰 등 사정당국 또한 입찰담합.특정업체 봐주기.뇌물수수 등 투자기관의 비리에 대한 대대적 내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결과를 주목한다.

이래서야 공기업들이 무슨 낯으로 당국과 국민에 대해 "규제와 간섭을 철폐하고 인사.예산에 독립성을 달라" 고 요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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