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중국 훌리건 "일본·한국 싫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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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지난달 29일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에 실린 기사다. 전날 충칭(重慶)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 대회 일본과 이란의 경기에서 일본 응원단에 쓰레기 봉투를 집어던지는 등 극단적 반일 감정을 표출한 중국 관중에게 자제를 호소한 것이다. 그러나 31일 벌어진 일본과 요르단의 8강전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5만여 중국 관중은 일방적으로 요르단을 응원했다. 반면 일본 선수가 공을 잡으면 일제히 "우-" 소리를 내며 야유를 퍼부었다.

경기 시작 전 요르단 국가가 울려 퍼지자 중국 관중은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경청했다. 그러나 일본 국가가 이어지자 대부분 자리에 앉아버렸다.

관중석엔 "일본인은 아시아 인민에 사죄해야 한다" "일본인은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중국에 반환하라"는 정치색 강한 대형 현수막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중국 관중은 간식용으로 애용하는 해바라기씨 봉투 등 각종 쓰레기를 일본인 응원단 쪽으로 집어던졌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간신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일본 응원단의 등 뒤로는 험한 욕설이 쏟아졌다. 일부 일본 언론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 반일 감정이 뿌리 깊은 충칭에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산둥(山東)성으로 경기장을 옮기는 4강전 이후엔 상황이 호전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과 중동 국가의 아시안컵 경기 때도 한국팀에 중국인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따라서 일각에선 중국인들이 반일 감정 때문에 일본팀을 험하게 대한 게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과 일본 축구에 오랜 세월 눌려 온 중국 축구 팬들의 콤플렉스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야유와 비난, 그리고 상대팀엔 응원과 격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시아 화합의 장이 돼야 할 아시안컵 축구 대회가 중국 관중의 속 좁은 행태로 멍들고 있다.

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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