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을 절망케 하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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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시국을 보는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또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통령부터 소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과연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가." 국민은 거듭 묻고 있다. "이런 정치하려고 그렇게 뽑아 달라고 애원했는가." 정치권이 국민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고, 나라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지금과 같은 행태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은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어디를 가도 절망과 불안의 목소리뿐이다. 이런 신음소리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왜 안 들릴까. 왜 집권세력에는 국민의 아픔이 보이지 않을까. 권력놀음에, 자기들끼리의 잔치에 바로 곁의 신음소리조차 이제는 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도대체 나라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며, 정치는 왜 있으며, 정부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입으론 미래를 말한다. 그러나 손발은 30년 전, 60년 전, 100년 전의 일을 파헤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역사해석의 권리가 정권의 전리품인 줄 알고 있다. 자신들은 선(善), 그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악(惡)으로 규정하는 편가르기를 무슨 대단한 전술인 줄 알고 걸핏하면 꺼내들어 나라를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야당도 똑같다. 처음엔 "여당을 못 믿겠으니 우리라도 나라를 살리겠다"고 외치더니 여권의 공세 한두 번에 곧장 진흙탕에 뛰어들었다. 야당이 강조했던 민생과 상생은 간 곳이 없고 '죽기 아니면 살기'의 오기뿐이다.

상황은 국민이 근본적인 문제로 불안해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서민들까지 수입이 늘고 줄어듦보다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시장경제가 지속될지, 개인 또는 계급독재를 반대하는 민주주의가 지속될지를 우려하고 있다. 나라 장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정치권을 향해 싸우지 말고 민생을 챙기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이번엔 이렇게 주문한다. "잘하는 것은 바라지 않으니 제발 조용히만 있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