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 "정수장학회 검증 용의" 속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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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3일 당사를 방문한 김승규 법무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지난달 대표로 재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이 취재를 하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바짝 다가가야만 할 정도로 '속삭이듯' 말하는 박 대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제법 떨어진 자리에서도 내용이 전달될 정도로 음성이 커졌다. 국가 정체성 문제와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3일에도 박 대표의 어조는 강하고 높았다. 그는 이날 "나는 국가적인 문제를 질문하는데 청와대나 여당은 나의 개인사로 문제를 집중시킨다"고 말했다. 여권이 정수장학회 문제를 집요하게 건드리고, 박 대표 자신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관시켜 공격하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이날 정수장학회를 검증하자는 여당의 주장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사 결과 정수장학회의 모태가 된 부일장학회의 몰수 과정에 문제가 드러날 경우 박 대표가 받을 타격을 생각한다면 부담스러운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더 이상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여당이나 당내의 비판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표가 이참에 아예 정수장학회 문제를 다 정리하고, 더 이상 잡음이 안 나오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 몰수는 개인재산을 불법적으로 강탈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정수장학회는 이미 여러 차례 감사를 받은 만큼 운영상의 문제점도 없다"고 했다. "부일장학회를 문제 삼는다면 그보다 훨씬 가까운 과거에 벌어진 TBC 등 언론사 통폐합 문제를 먼저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도 했다.

박 대표가 앞으로 적절한 시점에 유신문제도 정리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대표를 연일 공격하고 있는 당내의 이재오 의원뿐 아니라 여권의 공세에도 정면대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박 대표는 국가 정체성 문제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따지고 넘어가겠다는 태세다. 그는 이날 김승규 법무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이념이나 체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문제 등이 모두 헌법에 들어있는데 거기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하면 경제도 생물과 같아서 움츠러들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훼손 안 되는 사회라는 것을 분명히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박 대표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정체성 문제에 대한 확고한 규명의지를 밝혔다. 그는 '의문사위 활동을 존중한다'며 포괄적인 과거사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한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간첩이 민주인사로 둔갑하고 간첩이 군장성을 조사하는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야당이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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