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재산권 보호 안되는 경제개혁 안될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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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대법원은 민사소송법 개정시안을 확정 발표했다.

개정안중 관심을 끄는 것은 우선 소액채무 변제명령 및 감치조치다.

1천만원 미만 채무자가 확정 판결에도 빚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 신청에 따라 법원에서 일정 기간내에 변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골자다.

이렇게 되면 위반시 과태료나 30일 이내 감치 등 불익이을 당하게 된다.

또 채무 불이행자 명단을 금융기관에 통보, 신용 불량자로 분류해 대출은 물론 신용카드 사용도 불가능하도록 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은 개인 재산권 제도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재산권에 대한 확실한 보호 장치의 정착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재산권 보호장치가 미흡하면 우선 생산적 경제거래가 쉽게 일어날 수 없다.

기존의 민사소송법처럼 채무자가 배짱을 부려도 채권자도 어쩔 수 없고 심지어 법집행자마저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법적.사회적 제도와 관행속에서 어떻게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대차관계가 쉽게 이뤄질 수 있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신용관행이 정책되길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 (緣木求魚)' 일 것이며 신용 대신 제3자, 제4자 보증 관행이 일반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용 거래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기존의 민사소송법처럼 채권자의 재산권 보호 체제 미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임차 계약에 대해 제3자의 공평한 계약 집행자가 없을 경우 채권자가 안전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그대로 경제에 부담이 된다.

경제에 유익한 거래가 원천 봉쇄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며 이런 모든 것이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고 나아가 경제 발전에 짐이 되게 된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답은 더욱 쉽게 나온다.

서구경제의 장기발전을 연구해 온 학자들에 의하면 영국과 북미 등 영어권 국가가 스페인.포르투갈.남미 등 서반아어권 국가들에 비해 높은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 이유는 전자의 경우 개인 재산권 보호가 최우선적인 사회 질서인 반면, 후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탐관오리나 양반계급의 세도가 판을 치던 이조후기부터 백성들의 재산권에 대한 훼손이 극에 달해, '가난을 무기' 로 이들에 대항했던 백성들의 삶의 모습들이 여러 문헌을 통해 나타난다.

또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또 지난 30여년간의 개발 독재 체제를 거치면서 개인 재산권에 대한 공정한 제3자 집행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우선 순위' 제1의 경제개혁은 바로 재산권 보장을 위한 개혁이어야 한다.

재산권의 안정적 보호는 경제발전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경제개혁을 기존의 재산권 관계를 '외부 힘' 에 의해 바꿈으로써 보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그런 개혁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그릇된 기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좌승희 한국경제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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