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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 이전 비용 부담은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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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얼마 전 일요일 오후 아들을 데리고 사무실에 들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산 3호터널을 지나면 바로 옆으로 철조망이 쳐진 높은 담장이 보인다. 아이가 담장 너머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담장 안에는 미군 기지가 있으며, 그 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잘되면 그곳에 공원이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녀석은 벌써부터 풀밭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는 듯했다.

수도 서울에 위치한 거대한 군사기지는 이젠 더 이상 든든한 안보의 상징이 아니다. 나라 안팎의 사정도 변했고 전쟁을 억지하고 나라를 지키는 방법도 변했다. 한국에 온 외국인 투자자에게 용산기지를 보여주며 이것이 우리 안보의 주요 요소라고 설명한다고 해서 과연 한국이 안보 면에서 튼튼한 나라라고 생각해 줄지 의문이다.

지난주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제10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용산기지 이전 합의서가 타결됐다. 앞으로 행정부 내 절차를 거쳐 국회에 동의요청서를 제출하면 새로운 합의서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내 언론과 정치권.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그간 협상에 깊숙이 참여해 왔던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향후 논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몇 가지 건의를 하고자 한다.

첫째, 합의서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 다음에 내려주길 바란다. 지금까지 언론 등에서 용산기지 이전 합의서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제기했고, 이러한 주장들이 상당수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정부는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합의서의 내용을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일부 왜곡되거나 과장된 주장에 대해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가서명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합의서 문안 자체를 공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는 타결 직후 합의서에 있는 주요 내용을 언론을 통해 국민께 설명을 드렸다. 사실 관계에 있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추가로 합의서 내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경우에는 금명간 외교통상부 홈페이지(www.mofat.go.kr)에 올려질 '용산기지 이전합의서 문안소개 자료'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둘째, 비용 대 효과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줬으면 한다. 협상의 결과는 현실에 기초한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엄연히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100%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우리가 부담한다는 데 일부 이견도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은 우리의 안보도 지키면서 용산기지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함으로써 발생하는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체 기지 건설을 위해 평택 지역에 52만평을 사줘야 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서울 중심에 115만평의 땅을 돌려받는다는 것도 생각해줬으면 한다. 전체적인 주한미군 재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우리는 미군이 그동안 점유하고 있던 총 7300여만평의 토지 중 66%에 달하는 5000여만평을 돌려받게 된다. 반환될 부지 중 370여만평은 서울.부산.춘천 등 대도시 도심지역의 초고가 부지에 해당한다.

또한 용산기지를 포함해 향후 이전.통폐합하게 될 총 35개 미군기지 중 우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기지는 10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25개 기지는 미국 측에서 비용을 부담하기로 돼 있다. 이런 자세한 협상 결과를 고려한 뒤에야 용산기지 이전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용산기지 이전을 위한 협상은 동맹 간의 협상이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번 볼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이 꼭 우리만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미국의 부모들은 한국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자녀들을 이곳에 보낸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이해가 무엇이든 간에 미국의 귀한 아들.딸들이 한국에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동맹은 존망의 위기 앞에서 서로 의존하는 사이다. 동맹 사이의 협의를 적과의 거래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안보란 국민의 생명과 직접 관련된 일이다. 최선을 추구하되, 최악에 대비하는 작업이 필수다. 안보 현안을 다루는 데 안일한 가정이란 있을 수 없으며, 여기에 드는 비용을 금전적으로만 셈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김수권 외교부 북미3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