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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꿈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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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황동규(1938~ ) '꿈꽃' 전문

내 만난 꽃 중 가장 작은 꽃
냉이꽃과 벼룩이자리꽃이 이웃에 피어
서로 자기가 작다고 속삭인다.
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
이 빠진 꽃잎 하나 없이
하나같이 예쁘다.

동료들 자리 비운 주말 오후
직장 뒷산에 앉아 잠깐 조는 참
누군가 물었다. 너는 무슨 꽃?
잠결에 대답했다. 꿈꽃.
작디작아 외롭지 않을 때는 채 뵈지 않는
(내 이는 몰래 빠집니다)
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이런 꿈꽃을 발견하고 사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서로가 잘나고 크다'고 욕심 부리며 사는 세상은 다름아닌 인간의 삶이다. 사랑이 귀하고 비워가는 정신이 소중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꽃들, 시인이 꿈꾸는 꽃은 바로 냉이꽃이나 벼룩이자리꽃이리라. 이 빠진 꽃잎 하나 없이 하나같이 예쁜 꽃들이며(내 이는 몰래 빠지지만) 그대 발치에 핀 꽃들인데도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는 깨달음의 메시지가 감동적이다.

송수권<시인>

◇필자 약력 ▶1940년 전남 고흥 출생 ▶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 '여승' ▶소월시문학상.정지용문학상.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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