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나 따라 메쳐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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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때 후배에게 메치기를 당하면 오기가 생겼지만 지금은 후배가 제대로 메치면 기분이 좋아요."

‘전기영’ 대표팀트레이너(왼쪽)가 금메달 유망주 이원희와 직접 대련을 하며 지도 하고 있다.

태릉선수촌에서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땀흘리고 있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기영 트레이너(31)는 99년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은퇴, 지도자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일본 실업팀에서 1년여 플레잉코치로 용병 생활을 하며 일본 코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도하는지 견문을 넓혔다. 또 모교 경기대에서 체육교육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이 모든 것이 장차 강단에 서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이다. 그리하여 2000년 11월 유도 남자대표팀 트레이너가 됐다.

선수 시절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리던 전 씨는 "선수 시절에는 화려했다고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초보자다. 선수마다 특성, 주특기가 다르다. 짧은 경력으로 기술을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이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땀 흘리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감독이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면 전 씨가 긴장을 조여주고 감독이 거칠게 대해 선수들이 힘들어하면 전 씨는 안타까워 살짝 풀어주기도 한다. 전 씨는 "트레이너가 된 후 선수들 표정만 봐도 내가 겪었던 경험이 떠올라 선수들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훈련을 열심히 해야, 힘들게 고통스런 시간을 겪어야만 땀의 결실이 되돌아온다는 걸 알지만 힘들면 자연스레 요령도 피우고 꾀도 부리게 된다는 설명. 전 씨는 "연배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편하겠지만 때로는 화를 내고 모질게도 하니까 얄미울 때도 있을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이원희 등 후배들은 전 씨를 맏형으로 생각한다. 권위의식 같은 것이 전혀 없어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정도라고.

경량급 선수들과는 직접 대련으로 지도한다. 전 씨는 "선수시절 대련 훈련으로 서로 넘기다 보면 승부근성이 있어 기분이 언짢아지기도 한다. 특히 실력이 뒤지지 않는 선수에게 심하게 넘어가면 오기가 생겨 실전을 방불케 한다. 트레이너가 되니까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내가 심하게 메치기를 당해도 가르친 대로 제대로 기술이 들어간 것이므로 오히려 기분도 더 좋아진다. 몸은 조금 아프지만…"이라고 웃었다.

유도는 개인 종목이라 선수 시절에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되지만 지도자는 코칭 스태프 간의 융화, 선수 개개인 관리 에도 신경써야 한다. 선수는 자신의 라이벌 선수 몇몇만 연구하면 되지만 지도자는 전체급의 우승 후보, 라이벌을 파악해야 한다. 각국 우승 후보들의 비디오 분석을 하다 보면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

태릉=일간스포츠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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