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는 천하를 살찌게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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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34면

한휴(韓休)는 중국 당 현종 때의 재상이었다. 그는 직언을 서슴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의 쓴소리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현종의 얼굴이 야위어갈 정도였다. 한 신하가 말했다.

강민석 칼럼

“한휴가 재상이 된 뒤 폐하가 매우 수척해지셨습니다. 어찌 파면하지 않으십니까.”
현종이 답했다. “한휴 덕분에 나는 야위었다. 그러나 천하는 살찌지 않았는가.”
뉴욕 헤럴드 기자 출신의 루이스 하우는 24년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분신이었다. 루스벨트보다 11살 더 많은 그는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미스터 노 맨(No man)’이었다. (『1인자를 만든 2인자들』 중)

루스벨트가 아이디어를 내면 하우는 있을 법한 모든 결점을 찾아냈다. 불륜에 빠졌던 루스벨트의 이혼을 막은 것도 그였다. 말을 듣지 않을 땐 욕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하던 중이었다.

“루스벨트, 이 멍청이! 분명히 말하는데 절대로 안 돼.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 당신은 정말 지독한 바보야.”

루스벨트가 고집을 피우면 물론 ‘예스’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이었다. “그래 좋아, 그렇게 해봐 이 돼지머리야. 나중에 내가 말 안 해줬다고 그러지 마.”

하우의 ‘노’는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 일단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게 여론을 전하러 하우를 찾았다. 하우의 ‘노’는 루스벨트와 세상 간의 소통이었다.

‘노 맨’을 휘하에 뒀을 때와 두지 않았을 때 통치자들의 운명은 달라진다.
당 현종은 한휴나 요숭·장구령 같은 명신이 재상으로 보좌하는 동안엔 태평성세를 구가했다. 후세는 이를 ‘개원(開元)의 치(治)’라 부른다. 말년에 유능한 장구령을 해임하고 이임보 같은 ‘아부 맨’들을 중용했을 때 현종은 안사의 난을 겪었다.
루스벨트는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으로 발돋움시킨 인물이었다. 하지만 1936년 하우가 병사한 뒤 언론은 “하우의 조언이 없어지면서 루스벨트가 기세와 방향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 곁에는 과연 한휴나 하우 가 있을까.
6월 21일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임명 때다. 청와대는 “이른바 검찰 조직 일신이라는 것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고 인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7월 28일 김준규 후보자를 낙점할 때의 청와대 브리핑은 이랬다.
“소통을 중시하며, 유연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로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는 데 적임자. 글로벌 스탠더드로써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

인사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한 달 만에 180도로 바뀌었다. 검찰은 그대로인데 한 달 전에는 조직을 일신할 사람, 이제는 안정시킬 사람이란다. 그동안 검찰 수장 없이 조직의 일신이 다 이뤄지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이제는 검찰 조직을 일신할 필요가 없다는 얘긴지 헷갈린다. 검찰 총수에게 왜 ‘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한 달 전에는 전혀 언급조차 안 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검찰엔 어떤 사람이 필요한건가.

좀 극단적으로 꼬집자면 ‘인사청문회 통과’란 컨셉트 말곤 이번 인선에선 아예 원칙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청와대의 고충도 클 것이다. ‘천성관’이라는 잘못된 카드를 내놓았다 스텝이 꼬여도 왕창 꼬여버렸으니 말이다.

‘천성관 카드’ 등장 과정을 보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해진다.
검증 작업에 참여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본지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천 전 후보자를 총장 후보로 추천한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이 대통령이 천 전 후보자를 여러 차례 칭찬했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를 괜찮게 보고 있다는 감을 받은 것이다.” <중앙sunday 123호 4면>

이 설명대로라면 청와대 민정수석이 천성관 전 후보자를 추천한 배경은 ‘대통령의 의중’이었다. 대통령 심기만 맞추면 후보에 대한 여러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발표 때마다 달라지는 인사 컨셉트도 사람에 맞춰 만들어낸 것 아닐까.

참모는 대통령의 ‘반사체(反射體)’여야 한다. 대통령과 ‘부딪쳐서’ 빛을 세상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예스맨들은 스스로 ‘발광체(發光體)’가 되려 한다. 발광체는 서로 빛을 빨아들이며 수를 줄여나가려는 속성이 있다. 마지막에 하나 남은 발광체가 되기 위해서다. 그들은 절대 ‘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노 맨’ 없는 대통령이 성공했다는 얘기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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