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침은 아이들 가슴에 뿌리는 毒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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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16면

‘인사이드’가 1987년 미군부대에서 복무할 때다. 그때 갓 배치를 받고 부대 화단 주변 청소를 맡아 했다. 가꾸면서 스스로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그 화단에 어느 날 흠집이 보였다. 파랗게 피어있어야 할 화초 한쪽이 누렇게 죽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주변의 풀도 마찬가지였고 흙에는 검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뭐지?’ 하는 생각에 그 흔적을 따라가 보니 집무실과 연결되는 문이 나타났다. 그 문과 가장 가까운 책상의 주인은 미군 선임하사였다. 그가 일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문만 살짝 열고 “퉤!”하고 침을 뱉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뱉어내는 침 때문에 화초가 죽었을까? 아니었다. 그는 씹는 담배를 애용했다. 그는 침이 아닌 독(毒)을 뱉어냈다. 그 독이 화단을 망치고 있었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20>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이 경기 중에 담배를 씹는, 그리고 검은 분비물을 뱉어내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타석에서, 마운드에서, 그리고 더그아웃 주변에서 씹는 담배를 질겅거리다 바닥에 “퉤!” 뱉어낸다. 메이저리그에서나 보던 거다. 그 풍경이 대한민국 프로야구에 수입(?)된 거다.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고, 미국 전지훈련, 가을 캠프, WBC를 포함한 국제대회 등에서 해외선수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서서히 들어온 문화다.

TV 드라마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면 왠지 멋있게 보이고 자신도 피우고 싶어진다는 어떤 조사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플레이어의 어떤 행동을 보면 뭐든 따라서 하고 싶어진다. 메이저리거 사이에 씹는 담배가 유행한 것도 그런 이유다. 왠지 도도하면서 터프해 보인다는 거다. “타석에서 씹는 담배를 뱉어내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꼭 메이저리그 타석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는 선수(행크 블레이락)도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씹는 담배의 시작은 20세기 초반 스핏볼(spitball)이 등장하면서 투수들이 침을 많이 만들어내려고 구강운동에 좋은 담배를 애용하면서였고, 비슷한 시기에 담배회사들이 야구카드를 통해 적극적인 광고를 하면서 유행됐다는 게 정설이다.>

씹는 담배는 입과 인후근육을 움직여 장시간 노동에서 신경, 근육의 진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다. 또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성분 때문에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애연가의 주장도 있다. 승부의 연속, 계속되는 집중과 긴장 아래서 경기를 치러내는 야구선수들은 그래서라도 담배를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씹는 담배를 애용(?)하고 있는 한 국내 선수는 “담배라기보다는 껌이라는 느낌으로 씹는 담배를 한다. 구입에도 큰 부담이 없다. 이태원에 주문하거나 외국전지훈련 갔을 때 한꺼번에 사온다. 피우는 담배는 연기도 시선도 피해야 하지만 씹는 담배는 그런 부담도 없다” 고 한다.

그러나 피우건 씹건, 담배는 해롭다. 특히 씹는 담배는 구강암 발병률이 80% 높아진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독을 뱉어내기 때문에 자연보호(?)에도 좋지 않다. 무엇보다 그 장면을 보는 청소년과 어린이가 하고 싶어지고, 흉내 낼까 위험(!)한 행동이다.

유영구 KBO 총재는 ‘클린베이스볼’을 표방하고 있다. 선수들이 검은 침을 “퉤!”하고 뱉는 모습이 그들을 선망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리 없다. 씹는 담배를 야구장에서 퇴출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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