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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장애·병마 털고 ‘방송 리포터’ 날개를 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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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남자는 신장이 아파 투석의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 여자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마이크 앞에선 장애와 병마도 사라진 듯했다. 지난달 27일 대구교통방송 스튜디오에서 이지수(左)·권선하씨가 첫 리포터 실습에 나섰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제공]

“중부내륙지선 대구 쪽으로 들어오는 차량들, 화원 쪽을 시작으로 서대구까지 어려운 구간은 없습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스튜디오. 막상 마이크 앞에 앉자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식은땀이 났다. 엔지(NG) 내기를 수차례. 30초의 낭독 시간이 30분 같았다. 지난달 27일 오후 1시 대구시 대명동에 있는 대구교통방송의 라디오 스튜디오. 두 남녀의 조금은 ‘특별한 첫 출근’이 있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지수(29·대구시 달성군 농공읍)씨는 2급 장애인. 그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배운 뒤 2007년 2월부터 치과장비 업체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자신만만하게 내디뎠던 사회 첫발이었다.

청천벽력이 내린 것은 지난해 6월,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다. 병원에선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내렸다. 매주 3회씩 힘겨운 투석이 이어졌다. 청년의 풋풋한 꿈은 꺾이고 말았다.

“결국 회사도 그만뒀어요. 토마토 농사 짓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만 하면 제 자신이 얼마나 밉던지….”

낙심은 길지 않았다. 올 초 ‘다시 인생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에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5월, 반전(反轉)의 기회가 찾아왔다. 공단에서 ‘교통 리포터를 뽑는다’는 공문 한 장이 날아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몸에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모두 7명이 지원했다. 카메라 시험과 면접을 거쳐 지난달 ‘예비 리포터’ 2명이 탄생했고, 27일 처음 스튜디오에 출근해 방송 연습을 했다.

이씨와 더불어 낙점을 받은 이는 권선하(27·여·대구시 수성3가동)씨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억척같이 살았다. 권씨는 콜센터 상담원과 백화점 안내방송원으로 일했다. “입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이번 채용 때도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매달려 열매를 땄다.

둘은 최근 한 달간 서울의 아나운서 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학원 수강료며 교통비·병원비 등은 공단이 부담했고, 학원도 좋은 취지에 공감해 개인 지도비를 25%만 받았다. 두 달간의 인턴이 끝나는 10월에 최종 면접을 통과하면 정식 리포터로 꿈을 펼친다.

둘을 지도한 학원 관계자는 “인터뷰법과 즉흥대사 기술 등을 꾸준히 기르면 방송인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겠다”고 했다.

이제 이지수씨는 더 부푼 꿈을 꾸게 됐다. “라디오 DJ까지 도전하고 싶어요. 학생회 시절엔 재담꾼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권선하씨도 리포터 활동을 축으로 장애인의 경력 개발을 위한 공부를 하겠다는 새 희망을 보탰다. 장애와 병마의 그늘은 이미 그들을 떠난 듯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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