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중국서 8년째 떠도는 탈북 여성 “한국 가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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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에서 8년째 떠돌면서 ‘한국행’을 꿈꾸고 있는 이정화씨(가명·右)와 그의 딸 미향(가명).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2001년 겨울. 북한 땅 최북단에 있는 함경북도 무산군에는 살을 에는 듯한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몰아쳤다. 두만강은 아스팔트보다 더 단단하게 꽁꽁 얼어붙었다. 당시 스무 살이던 이정화(28·가명)씨는 달빛이 없는 그믐을 택해 강으로 나갔다. 그래도 국경수비대 병사에게 발각되면 총알이 머리를 관통할 것이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강추위에 국경수비대의 감시가 소홀해졌는지, 이씨는 이날 밤 극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병들고 연로한 어머니,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작은오빠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이씨는 이를 악물었다. “제대로 못 먹고 감시 받으면서 사람 대접 못 받는 곳에 사느니 죽더라도 떠나겠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국 쪽을 향해 내달렸다. 중국 땅에 닿는 순간 “이제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길게 한숨을 다 내쉬기도 전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엄습하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길을 물어 물어 중국 동북 3성의 A도시로 들어간 이씨는 얼마 후 중국동포 한모씨를 알게 됐다.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구하기 힘들었던 이씨는 한씨에게 점점 의지했고, 두 사람은 자연스레 동거를 시작했다.

먹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씨에게 중국 생활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말투가 왜 그러냐”고 묻는 바람에 겁이 나서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불법 밀입국자로 분류해 적발하면 북한으로 송환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씨는 바깥출입을 더욱 삼갔다.

“중국말을 못해 일도 할 수 없고 외출도 못하니 너무 답답하더군요.”

이씨는 몇 차례 몽골 루트를 통해 한국행을 시도했지만 좌절 끝에 포기해야 했다. 2004년 딸 미향이가 태어난 후에는 중국과 몽골 국경을 이동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8년가량 중국 땅에서 떠돌면서도 이씨는 한국행을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딸아이만이라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수백 번 되뇌었다. 엄마가 탈북자 신분이어서 중국법상 혼인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딸 미향이도 아직 주민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향이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이씨는 얼마 전 한국의 탈북자 인권보호단체를 통해 1998년 아버지와 함께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큰오빠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탈북한 지 4년 만에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래도 한국행 희망이 다시 생긴 이씨는 중국동포 남편을 설득했다.

북한을 탈출한 엄마, 중국동포 아빠, 그리고 무국적자 딸. 일가족 3명은 막연한 희망을 안고 최근 베이징으로 잠입했다.

“공안의 검문에 걸리면 어떡하나” 싶어 내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씨는 최근 베이징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는 “나에게 이제 남은 소망은 단 하나뿐”이라며 연신 울먹였다. “우리 딸 미향이가 한국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곁에 서 있던 미향이는 한국어가 서툴러 엄마를 중국어로 “마마”라고 불렀다.

이날 기자는 2년 전 엄마가 혼자 한국으로 떠나면서 지인에게 맡겨진 최광열(6·가명)도 만났다. “엄마 얼굴이 기억나느냐”는 질문에 광열이는 북한 사투리로 “잘 안 납네다”라며 수줍어했다. “누가 보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오·마·니”라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이씨 모녀와 광열이, 그리고 또 다른 탈북여성 박정선(25·가명)씨는 28일 베이징의 주중 한국문화원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이들은 “탈북자다. 한국으로 보내달라. 제발 살려달라”며 세 시간 동안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주중 한국대사관과 총영사관은 문화원 관계자를 통해 “문화원은 법적으로 외교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탈북자를 보호해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총영사관은 문화원 측을 통해 “자력으로 영사관에 들어와야 보호받을 수 있다”며 전화번호를 안내했다. 탈북자들은 “영사관 앞에는 공안이 지켜서 접근조차 불가능하다”고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이들 네 명은 이씨 남편과 함께 잠적했고, 현재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씨 가족 이야기는 기구한 운명에 짓눌려 사는 탈북자들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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