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방한 스칼라피노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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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명예교수 로버트 스칼라피노 박사는 아시아문제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일 것이다.

그는 하버드대 정치학박사로 1949년부터 버클리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중국 방문 36회, 옛소련.러시아 방문 18회, 북한 방문 4회, 38권의 저서와 4백94건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아시아에 관한 놀라운 연구활동을 해오고 있다.

7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함을 자랑하고 목소리는 맑고 힘차다.

국토개발연구원 주최 '21세기를 향한 한반도 구조개편' 이란 주제의 국제회의에 참석한 그를 만나 빌 클린턴의 불행, 위기와 북한과 21세기의 한국에 관한 그의 깊은 통찰을 들었다.

만난사람=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김영희 =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인지 위성에 관해 새로 들은 게 있으시면.

스칼라피노 = 나만이 아는 정보는 없어요. 다만 북한은 김정일 (金正日) 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최고인민회의가 열리는 것과 때를 맞춰 위성발사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걸로 압니다.

김 = 북한 정부는 인민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군요.

스칼라피노 = 북한 당국으로선 실패를 인정하기 힘들 겁니다.

김 = 일본이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는데 진정이 됐습니까.

스칼라피노 = 한국과 미국이 일본에 흥분하지 말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활동을 살리자고 간곡히 요청했어요. 북.미회담이 몇가지 합의를 보는 단계에 와있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을 열심히 설득했어요.

김 = 미국 의회는 북한에 제공할 중유를 살 예산을 깎아버렸는데 클린턴정부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습니까.

스칼라피노 = 의회는 처음부터 행정부의 북한정책이 일방적으로 양보만 한다고 비판을 해왔습니다.

미사일 소동이 거기에 기름을 부은 꼴이지요.

김 = 클린턴에겐 대책이 없습니까.

스칼라피노 = 클린턴은 탁월한 대중정치인입니다.

이익단체와 소수민족, 모든 세대와 풀뿌리들을 직접 상대하는 정치에 능해요. 그래서 의회를 등한시했어요. 민주당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이 사정을 더 어렵게 만든 겁니다.

김 = 르윈스키 사건이 클린턴의 대외정책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가가 우리의 관심거리입니다.

스칼라피노 = 스캔들 이전에 미국엔 신고립주의와 내셔널리즘의 경향이 있어 왔어요. 우리가 온세상 일에 너무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그 비용을 너무 많이 부담한다는 불만에서 시작된 거죠. 이제는 세금을 줄이고, 사회복지를 늘리고, 교통과 통신시설을 개선하는 국내문제에 더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김 = 어떤 세력이 신고립주의를 주도합니까.

스칼라피노 = 다수는 아니고, 노동조합에 동정적이고 이민에 반대하는 민주당의 좌파와 전통적인 의미에서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공화당 우파에 속하는 소수의 미국인들입니다.

이상한 연합이지요. 5년이나 10년전보다 신고립주의 경향이 강합니다.

김 = 클린턴은 북한정책에 관한 그런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스칼라피노 = 북한이 붕괴하는 사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설명하면서 의회를 설득해야지요. 북한이 붕괴하면 미국.한국엔 정치.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되고, 동북아시아의 긴장이 심각하게 고조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김 = 도덕적 권위가 손상당한 클린턴에게 그런 힘이 있습니까.

스칼라피노 = 그의 지도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에겐 그만한 결의 (決意)가 있어요. 그리고 여론이 그를 계속 지지합니다.

중간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도 지금은 클린턴의 지원을 청하고 있습니다.

김 = 언론은 연일 클린턴을 난타하고 여론은 그를 지지하는 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습니까.

스칼라피노 = 경제사정이 좋아서 평균적인 미국인들의 기분이 좋은 겁니다.

그게 모두 클린턴이 정치를 잘해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죠. 클린턴은 분에 넘치는 후한 점수를 받는것 같아요.

김 = 언론의 입장이 어렵겠네요.

스칼라피노 = 언론이 지면과 방송시간의 80%를 르윈스키 사건의 내막을 전하는데 할애하는 것을 여론은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여론은 언론의 보도와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수사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미국인들은 많은 정치인들이 혼외정사를 즐긴다고 알고 있어요. 정치엘리트들은 클린턴이 거짓말하는 걸 못참겠다고 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경말씀대로 클린턴이 잘못을 인정해 용서를 구하고 국민이 용서하는 식의 해결을 바랍니다.

김 = 북한문제로 돌아갑시다.

김정일은 이제 명실상부한 북한의 지도자가 된 건가요.

스칼라피노 =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군이 결속해 그를 지지하고, 김정일이 키워낸 젊은 테크노크라트들이 요직을 많이 차지했습니다.

기술관료들은 한결같이 경제개혁을 지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군은 강경파, 외교부는 온건파라는 이분법은 괜찮습니까.

스칼라피노 = 그렇지 않아요. 군의 현대화가 뭡니까. 기술발전과 잘 돌아가는 경제 아닙니까. 조직간에 영역싸움이 있고, 미국이나 한국이 어느 한쪽을 상대하면 다른 한쪽이 시기를 합니다.

김 = 한국통일에 관한 주변 4강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스칼라피노 = 중국은 현상유지를 갈망해요. 통일한국과 압록강에서 국경을 맞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걱정합니다.

그중 하나가 중국 동북부지역 조선족의 민족주의 색채가 강화되는 겁니다.

일본도 두 한국과 해결할 문제가 많은 상태로 한국이 통일되면 문제가 복잡하다고 봅니다.

러시아는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고, 미국은 통일에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이뤄지는 통일에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리 =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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