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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개의 습성 이해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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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 가운데 하나는 밥 맛 없는 인물들이 ‘ 외로 잘 나가는’ 것이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특징은 전반적으로는 밥맛이 없는데, 그래도 한 가지 정도는 똑 부러지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O국장의 재주는 ‘편가르기’다. 자신이 지목한 실세에 대해 확실하게 대립각을 세우면서, 적과 동지를 확연하게 구분 짓고,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재주라면 재주다.

모두가 모나지 않게 ‘둥글게 둥글게’ 살려고 노력하는 직장에서 모난 정이 되는 건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울 수 있지만, 그는 기꺼이 모난 정임을 자처한다. 어디서 그런 베짱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가 쏟아내는 독설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가 처음 회사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사원 시절에 직속상관의 험담을 집요하게 늘어놓은 끝에 결국 아웃시킨 일이었다. 그때의 그 사건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데, 직속상관이 믿고 털어놓은 개인 사생활을 퍼뜨린 것이어서 더욱 악질적인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보니 당연히 비난이 화살처럼 쏟아졌고, 모든 직원들이 그를 못 믿을 놈으로 지목하면서, 오랫동안 왕따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더 경악케 한 것은 결국 그만두리라는 예상을 깨고 끝내 버티더란 것이다. 우웩~ 사람들은 그의 끈질김에 완전히 속이 뒤집어졌다는 것 아닌가?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런 세월을 보내고 나면 반성도 하고 가끔은 개과천선을 해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웬걸, 그는 징벌의 세월이 지나자 다시금 습관처럼 과거와 같은 언행을 반복했고, 연이어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자 그때부터는 사람들은 ‘의례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냉소는 하되 관망만 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그 틈에 야금야금 O국장은 오늘날과 같은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O국장의 성공(?) 비결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미친개의 습성 이해하기

▷힌트 1|당신의 사악함을 이용한다!
당신 회사의 미친개가 내뱉은 말에 환호한 적은 없는가? 그를 혐오하면서도 그가 누군가를 공격할 때 통쾌함을 느낀 적은 없는가? 그렇다! 그는 사람들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성향과 그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이용한다. 겉으로는 이성적이고 고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기보다 잘난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당신의 사악하고 음험한 심리를 그는 꿰뚫고 있는 것이다.

▷힌트 2|가장 강한 놈에겐 적이 많다는 것을 안다!
잘난 놈에겐 적이 많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잘난 놈의 경우에는 사실상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경외하면서도 질시하기 때문인데, 안 그래도 고립되어 있는 그 놈을 공격하면 모두가 내심 ‘좋아라’ 하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해서 적극적인 소수의 지지자가 생기고 소극적인 다수의 지지자도 생기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는 그런 그의 역량을 활용하려 든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힌트 3|가장 강한 놈을 때려야 유명해진다는 것을 안다!
기왕 때릴 바에는 가장 강한 놈을 때려라! 정치권에서는 거의 고전에 해당하는 말이다. 특히 선거 때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대통령과 1위 후보는 늘 구타유발자 1호이기 마련이다. 가장 강한 놈에게 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강한 놈을 때리면 남들이 그를 같은 ‘급’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대적하려 들 지 않는데, 감히 나서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한 모양이다. 하다못해 그 용기만은 참으로 가상하다’고 생각하는 그 심리! 그 심리를 그는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힌트 4|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섣불리 물지 마라! 왜? 어설프게 물었다가는 싸대기 얻어맞고 ‘깨갱’하는 수모를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개를 우리는 ‘잡견’ 또는 ‘똥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이 또 낮은 강도로 이곳저곳을 물어봐야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는 없다. 그는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함부로 물지 않되,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해서 덥석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일단 물면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친개 중에서도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여기에 있는데, 아차 잘못 물었네 싶어도 고수는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물고 늘어지면 상대방이 귀찮아서라도 뭐라도 하나 던져주거나, ‘에이 똥 싶었네’ 하면서 ‘고마 하자’를 외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념하기 바란다. 미친개에게 물리면 이래도 저래도 쪽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힌트 5|주인을 버려야 할 때를 잘 안다!
적지 않은 상사가 이런 미친개를 자기통제 하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위험하긴 하지만 통제만 잘할 수 있다면, 내 것을 지키는 데에는 최고의 충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근거리는 아니더라도 측근집단의 변두리 어딘가에 그를 앉혀놓곤 하는데, 이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미친개에게 충성을 기대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실수는 의외로 자주 반복된다. 그리고 자주 당한다. 미친개는 절대 주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자기를 내칠 조짐을 보이거나, 더 이상 별 볼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나 주인을 버릴 줄 안다. 아니, 기가 막히게 그 때를 잘 안다.

▷힌트 6|무는 습성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다만 진화할 뿐이다!
상사 가운데 일부는 미친개를 교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제까지는 그가 미친개로 질풍노도와 같은 세월을 살았지만, 그것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거나 윗사람들이 존경받지 못할 짓을 해서 그런 것이고, 이제 자기 밑에서는 그가 온순한 양이 되어 안분지족하면서 살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는 말이다. 외견상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도 이제는 급이 있지, 사원 때처럼 함부로 굴진 않을 것이고. 그러나 잊지 말라! 그의 무는 습성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다만 세월이 지나고, 직급이 높아짐에 따라, 무는 기술이 고도화되어갈 뿐이다.

여러분에게 위의 힌트를 교훈삼아 미친개가 되라고 권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실제로 미친개가 회사 내에서 어슬렁거리며 당신을 노리는 상황에서 그를 외면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위의 힌트를 유념한다면,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거나, 물리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의문도 한번 제기해보기 바란다. ‘미친개는 위험도 감수할 줄 알고, 싸움도 할 줄 알고, 이겨본 적도 있는데, 나는 뭔가?’ 자신이 아주 불만족스럽다면, 당신 회사의 미친개를 물어보는 것을 한번 고려해보기 바란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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