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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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5장 길 끝에 있는 길

한씨네 일행이 어떤 품목을 팔고 어떤 품목을 사들이고 있는가를 탐지하고 다니는 사람은 배완호였다.

한씨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배완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윤씨네로서는 상당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한씨네의 황태 좌판이며 맥반석구이 좌판 근처를 하루종일 기웃거린다 한들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날의 매상액까지 얼추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는 의성읍내장뿐만 아니라, 비안장과 도리원장과 안계장까지 한씨네를 줄곧 뒤따라다니면서 장사 내막을 아금받게 탐지하여 그들이 팔고 사는 품목과 같은 것을 흉내내어 사고 팔았다.

한씨네의 황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용대리덕장에서 출하된 토종 노랑태였지만, 윤씨네의 황태는 속초나 주문진에서 소규모로 건조했다는 것만 서로 다를 뿐 두 패의 황태가 동해산 토종이란 이름을 붙여 손색이 있을 턱이 없었다.

눈썰미가 여축없는 똘똘한 장꾼이라 하더라도 용대리 덕장의 안용주 사장처럼 전문가가 아닌 이상 두 좌판에서 팔고 있는 황태의 올곧은 구분은 수월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씨네 황태에 비하면 윤씨네의 것은 언제나 시세가 눅은 편이었다.

아침 나절에 한씨네 좌판 먼발치로 가서 시세를 옅보았다가 한 쾌에 몇 백원이나 싼 값으로 팔았기 때문에 매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매기만 날개가 돋친 게 아니었다.

윤씨네 것은 구입원가 자체가 헐했기 때문에 사실은 한씨네보다 더 싼 값으로 팔아야 옳았다.

황태 한 쾌의 시세로 따져 적어도 칠팔백원의 차이를 두어도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윤씨네는 불과 삼사백원의 차이로 시세 겨룸을 두었다.

장꾼들이 시세가 헐한 것을 찾아다니긴 하지만, 똑같은 동해산 토종 황태인데도 시세 차이가 너무 심하면 십중팔구 정도가 아니라 틀림없이 물건 본래의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

숫제 다른 물건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었다.

적게 팔아도 이문이 남는 국산 화장품 가격처럼 시세를 훨씬 낮추고 싶어도 물건 자체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의심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상당히 위태로운 시세 결정인 셈이다.

그러나 원가의 시세를 불문하고 판매가격에 불과 삼사백원의 차이를 두면, 장꾼들은 비로소 같은 품목인데 이 좌판의 물건이 싸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런 상술이 상인들에겐 바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칼도 없이 남의 코 베가는 상술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 윤씨네들이 얻는 이익은 순전히 소비자들의 왜곡되었거나 배타적인 구매심리에서 얻어지는 횡재인 셈이었다.

물건 값이 무조건 비싸야 잘 팔린다는 서울의 고급백화점 점원들의 고백은, 뭉클한 고발성과 계몽성을 획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 장바닥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는, 비싼 것을 의심하기보다는 오히려 싼 것을 의심하는 굴절된 시세감각이 거품시대의 몽환에 힘입어 아직도 우리의 생활 기저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증거였다.

모순에 또다시 모순의 꼬리까지 달고 있는 기형적인 상거래 방식도 오래 전부터 너무나 교묘하게 정착되어 사회적 공통분모까지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엄청난 폭리성을 눈치 챌 수 없는 것이었다.

한씨네 일행보다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하고 그들보다 활기 있게 장사를 하며 앙갚음까지 하자는 복수심이 만든 알량한 상술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는 이미 불치의 병리현상이 된 엄청난 모순의 관행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시골의 5일장이 영세성과 낙후성, 그리고 쇠락과 소멸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가면서 스산한 모습으로나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이나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적 맥락에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장소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교차되는 통합과 분리의 에너지는 그들에게 끊임없는 활력을 주입해 주었다.

그곳은 기회와 교환의 장소였고, 혼담과 휴식을 그려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비 오는 날의 흙내음같이 셈으로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의 무한대의 장소였기 때문에 누구도 끼어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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