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작가 로레 베르트 2번째 한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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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얀 바탕의 종이작품 한 귀퉁이에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찍힌 한글 낙관 '로레 베르트' 가 시선을 확 잡아끄는 작품. 이름은 분명 외국 사람인데 한글로 새겨진 낙관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10월 3일까지 서울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로레 베르트전' 은 이렇게 작품의 예술성과 함께 작가 서명에 불과한 낙관에도 많은 관심이 모아진채 진행이 되고 있다.

02 - 544 - 8481. 지난 89년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서 개인전을 갖는 로레 베르트 (62) 는 칸트를 낳은 철학의 나라 독일 출신.

흔히 독일적이라고 생각되는 개념적 미술 (완성된 결과보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반 (反) 미술적 사조로, 이미지나 형상 대신 작가가 하고자하는 의미있는 말을 작품 위에 쓰기도 한다) 의 뉘앙스를 풍기는 아주 독일적인 작가이면서도 아시아 여러 나라의 종이를 사용한 작업이 동양적 색깔을 뿜어내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베르트는 70년대 네팔 친구의 영향을 받아 비서구 문화에 눈을 떴다.

이후 네팔은 물론 터키와 일본.이집트.아랍에미레이트공화국 등을 두루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반영했다.

첫 한국 전시 때 선물받은 한글 도장을 모든 작품에 사인 대신 사용하고, 또 어떤 작품에는 이슬람어 숫자를 크게 붙이기도 한다.

이는 그 자체로는 시각적인 형태가 없지만 문화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상징인 문자에 특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르트의 종이작업은 외형상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구겨진 종이를 화면 전체에 풀로 붙여 투박한 질감과 깃털처럼 부드러운 인상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더욱 확대해 공간을 구긴 종이로 가득 채우는 환경미술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또 하나는 면솜을 넣어 볼륨감을 준 네모난 종이봉투를 이어붙인 작품이다.

어떤 형태를 띠든지 베르트는 다른 역사와 전통, 문화를 가진 나라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과 이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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