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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길이 아니어도 거칠것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엔진의 거친 숨소리가 틀에 박힌 일상을 탈출하라고 재촉한다.

박력있는 네바퀴의 율동속에 흙먼지 날리며 재를 넘다보면 어느새 야생마에 올라탄 '황야의 무법자' 가 된다.

'길아닌 길' 에 널린 진흙탕.개울.구덩이.자갈도 반갑기만 하다.

달력이 한 해의 종점을 향해 살금살금 뒷걸음질치는 가을. 4륜 구동형 지프로 상큼한 바람을 맞으며 비포장길을 거침없이 누비는 '오프로드' 가 제철을 만났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로 보문단지가 떠들썩한 지난 주말 오전 10시. 고속버스터미널부근 서천교밑 고수부지에 지프행렬이 나타났다.

울산 오프로드모임인 '그린베레' 회원들의 '애마' 다.

차에서 내려 잠시 대화를 나눈 회원들은 서둘러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경주시 암곡동 뒷편 동대봉 산자락. 보문단지에서 경주자동차극장으로 좌회전하면 좌우로 길게 늘어선 벚나무가 암곡동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타난다.

암곡 제1경로당을 거쳐 산쪽으로 나아가니 덕동호로 내려가는 개천과 경운기가 지날 정도의 농로가 얼굴을 내민다.

고개를 숙인 벼이삭과 억새가 '이제는 가을' 이라고 외친다.

"지금부터는 4WD - H로 바꾸세오. " 이상희 (29) 회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전달된다.

4WD - H는 굴림방식을 2륜구동에서 4륜구동으로 바꾸는 첫 단계. 더욱 가파른 길에는 4WD - L로 굴림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처음 만나는 장애물은 60㎝ 깊이의 개천. 웬만한 승용차로는 버겁지만 별탈없이 통과한다.

상하좌우로 전신운동을 하며 울퉁 불퉁한 자갈길을 지나니 참나무.느티나무가 우거진 나무터널이 나타난다.

태풍의 영향으로 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있다.

평소 아름답게 보였던 안개지만 오프로드 매니아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아니다 다를까 부지런히 윈도브러시를 작동해보지만 불과 5m전방의 선두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30분가량 곡예운전을 하니 코스모스등 야생화와 잡초가 무성한 정상이다.

봉우리 높이는 3백m에 불과하지만 구곡양장의 오솔길.진흙길.자갈밭 6㎞를 1시간동안 헤쳐야 만나는 난코스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갑자기 '브레이크 밟아' 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흘러나온다.

조심스럽게 올라가니 깊이 3m에 둘레가 15m가 되는 커다란 구덩이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본 드라이버들은 저마다 10년 감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오프로드를 즐길 때 하산길은 오르는 것보다 배나 힘들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데다 물먹은 풀과 자갈이 사정없이 괴롭힌다.

갑자기 차량 2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30분이상 부지런히 무전을 날리지만 감감 무소식. 중간 집결지인 경로당 주변을 수소문한 후 다시 산을 올라가니 안개로 길을 잃은 차량들이 나타났다.

오후 2시.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달래며 오프로드 동호인들은 또하나의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는 울산 섬바위 주변에 펼쳐진 자갈길을 달리기 위해 다시 시동을 걸고 가을속으로 달려간다.

경주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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