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제2의 북핵위기를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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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의 핵 문제로 다시 한번 커다란 홍역을 치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 (對) 북한 지원에 대해 가뜩이나 부정적이던 미국 의회가 북한의 핵시설 건설 의혹과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직 상원과 절충과정은 남아 있으나 하원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대북 (對北) 중유공급 예산 3천5백만달러를 삭제했다.

약 2천만달러에 해당하는 올해의 미 (未) 조달분에 대한 자금배정도 불투명한 상태다.

미국 행정부는 자금확보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KEDO의 사무총장을 지낸 보스워스 주한대사는 본국에 가서 의회 설득작업을 진행중이다.

북한 인공위성 문제로 가장 충격을 받은 일본은 KEDO의 경수로 사업에 대해 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앞으로 2~3년간 우리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동안 일본이 약속한 경수로 분담액 10억달러를 앞당겨 집행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공위성 발사 이후 그러한 융통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또 일본이 중유대금의 일부를 부담해 줄 가능성도 없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의회의 협조를 얻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미국 대통령의 '힘' 은 법적인 권한이나 당의 지원보다는 설득력과 협상력에서 나온다고 한다.

특히 의회의 지지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자산' 을 활용해 의회를 설득하고 의회와 협상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개인적인 문제로 수세에 처해 있는 클린턴 대통령이 그러한 한반도 문제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만약 클린턴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남아 있다면 그는 그것을 자신의 구명 (救命)에 활용하는데 급급할 것이다.

이달초에 있었던 뉴욕 협상에서 미국이 중유제공과 경수로사업 진전을 위해 자기측의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북한은 1994년에 인출된 8천개의 연료봉중 아직 남아 있는 2백여개를 마저 봉인할 것과 지하시설 확인 및 미사일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을 개시할 것을 약속했다.

이러한 약속들의 이행은 1994년 제네바 합의와 그에 따른 KEDO의 존속에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미국의 사정이야 어떻든 중유조달과 경수로 사업에 큰 지장이 생기면 북한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김정일 (金正日)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는 이 시점에 북한이 반발해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제네바 합의는 불만스러운대로 무력행사 없이 북핵을 동결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만약 북한의 오산된 도박으로 제2의 핵위기가 일어나는 경우 1993년과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는 당시와 같은 미국 대통령의 집중된 관심과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

역시 미국의 적극적 관여를 필요로 하는 유엔 안보리의 개입도 미지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는 속수무책과 무력행사 사이에 중간적 대안 (代案) 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의회에 대한 설득력은 없어져도 군사력 행사권은 그대로 보유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여름에 있었던 케냐와 탄자니아에서의 미대사관 테러사건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에 폭격을 가했던 일을 상기해볼 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북한에 대해 무력행사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선언한대로 북한의 핵개발을 절대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고 있다.

협상이나 제재라는 중간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무력행사를 배제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worst case scenario) 를 상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무력행사를 하든 안하든 제네바합의의 폐기와 그에 따른 북한의 핵개발 기도는 우리에게 너무나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기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외교력이다.

우리는 먼저 미국의 행정부를 도와 의회가 KEDO사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을 설득해 경수로 사업의 진전을 포함한 제네바합의의 원만한 이행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뿐 아니라 일본의 안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한편 KEDO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는 노력도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외교역량을 북핵위기 재발방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승주(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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