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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경제포럼]실업문제점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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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실업문제가 사회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급증, 현 추세대로 가면 멀잖아 실업자가 2백만명을 웃돌 것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특히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경기를 부추기는 등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구조조정이란 대 전제와 맞물려 쉽지 않은 형편이다.

실업 문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정부의 실업대책에는 문제가 없는지, 또 어떤 개선책이 있을 지 등을 전문가 의견을 통해 점검해 본다.

▶장현준 = 실업 문제와 관련, 정리해고가 최대 관심사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는 선택의 문제인가, 아니면 불가피한 것인가.

▶조우현 = 현재와 같은 구조조정기에서 정리해고는 필수적이다.

다른 방법은 부차적일 뿐이다.

그러나 정리해고는 졸속으로 추진하면 제대로 실행되지도 않으면서 부작용만 낳을 뿐이므로 치밀한 준비와 노사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정리해고와 고용유지를 양자택일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정리해고를 하려면 중간 방안이 바람직하다.

해고 6개월~1년후 리콜 (재고용) 하는 일시해고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원덕 = 노사간 불신이 정리해고의 걸림돌이다.

불신을 씻기 위해서는 투명 경영을 통한 성과배분 등 기업의 변신 노력이 따라야 한다.

▶사회 = 현대자동차 사태를 계기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평가하나.

▶조 = 현대차 사태의 결과가 잘못됐다는 평가가 많은데, 이는 고용조정을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시해고가 미국에서 일반화된 점을 감안할 때 현대측은 목표한 대로 고용조정을 성사시켰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런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

IMF이후 정부 자체내 개혁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민심이 떠났고, 노동자에게 고용조정에 반대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사회 = 일각에서는 올 상반기중 명목임금은 2~3%만 떨어지고 실업자는 대폭 늘어난 점을 지적하면서, 임금을 더 줄이며 고용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원덕 = 명목임금은 그럴지 몰라도 실질임금은 7%나 떨어졌다.

지난 30여년을 돌이켜 볼 때 대단히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소비 위축은 경기 위축을 가져오므로 더 이상 임금이 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 = 이미 실업자가 상당히 생겼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 = 7월말 현재 공식적인 실업자는 1백65만명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과거 1%에 불과하던 비경제활동인구가 5~6%로 높아졌는데, 통계로 잡히지 않는 잠재 실업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정확한 전망은 어렵지만 4분기에는 실업자가 1백80만명선에 이르고, 내년 1분기엔 1백85만명 내외 (실업률 8.5%)가 돼 실업의 고통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엔 경기부양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실업자가 줄어들 전망이다.

경제 구조가 고성장.저실업 형태에서 저성장.고실업으로 바뀌었고, 앞으로 경제위기 극복후에도 중성장.중실업 경제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조 = 실업자 문제가 10년은 갈 것으로 본다.

5년간은 IMF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에 따른 것이고, 그후 5년은 2008년 발효될 그린라운드에 의한 것이다.

이산화탄소 쿼터를 정해 총량을 규제하려는 그린라운드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IMF 못지않은 고통을 요구할 것이다.

대책도 이런 전망에 맞춰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회 = 신규 실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조 = 물론이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대졸 취업률이 60%대였는데, 올해는 50% 수준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변변한 직업을 구하는 대졸자는 4명중 1명 꼴밖에 안된다.

실업이 장기화될 전망인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대학원 정원을 자율화, 대졸자들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학원에 가기 힘든 사람은 기업 인턴사원뿐 아니라 공무원 인턴.시민단체 공익요원 근무 등으로 광범위하게 흡수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사회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 =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되려면 실업대책이 제대로 마련돼야 하는데, 정부 대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 실효성이 낮은 것은 전망이 너무 틀렸기 때문이다.

연초 올 연평균 실업자 전망은 80만명이었는데 이미 2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 10년간 실업률은 2%대였고, 노동문제의 핵심과제는 인력난 해소였기 때문에 전망이 어려웠을 것이다.

당초 올 예산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아 재원조달에도 애로가 많았다.

정부는 지난 3월 첫 실업종합대책을 마련했는데, 이때는 예산이 5조원이었으나 현재 10조원으로 늘었다.

▶조 = 노동부 의사결정자들이 과연 시장과 부합된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정치적 배려와 고려를 담은 실업정책을 시행중인지,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때 그렇지 못하다.

실업대책의 본산인 노동부부터가 비능률과 비효율적 구조를 유지한 채 엄청난 예산을 쓰다보니 우왕좌왕하는 느낌이다.

▶이 = 현재는 선진국의 프로그램을 가져와 백화점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취지나 내용은 좋아도 실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안돼 있어 실제 실업자에게 전달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효율성에도 문제가 있다.

▶사회 = 어떻게 고치면 될까.

▶조 = 정부가 모든 것을 도맡을 게 아니라 민간에 위탁하는 과감한 아웃소싱 (외부발주) 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벤처기업 육성.창업 인프라 구축은 신용보증기금에 맡겨 중소기업을 지원토록 하는게 낫다고 본다.

지방노동사무소 위주로 운영하는 고용정보 제공과 직업상담도 민간에 넘겨야 한다.

공공근로 사업도 지금과 같이 무작정 돈을 푸는 방식보다는 정부가 실업자의 재력조사를 실시해 어려운 사람을 직접 지원하는게 낫다.

공공근로 사업은 21세기 지식산업으로 나가기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 현재 정부 각 부처 실업대책의 조정 통합이 안되고 있는 게 문제다. 조정통합 능력을 강화해 명실상부한 실업대책 내각이 돼야 한다. 또 실업대책 싱크탱크도 강화해야 한다.

▶사회 =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실업대책은 고용 확대 정책이 아닐까.

▶조 =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구조조정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대책으로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펴서는 안된다.

한계기업 근로자를 위해 경기부양책을 쓰면 구조조정이 더디게 돼 결국은 고통을 더 오래 지속시킬 뿐이다.

▶이 = 건설업은 20% 이상, 제조업은 15% 이상 생산이 감소했다. 이미 경쟁력 없는 업체 대부분이 무너졌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산업기반이 무너질 것이다.

현 단계에선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돈을 찍어내서라도 해야 한다. 무리하게 추가로 제조업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반대다.

▶조 = 경기부양은 과거 김영삼정부 초기에도 실패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구조조정 없이 경기부양책을 도입하면 다음 세대로 어려움을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회 =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 해법에는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구조조정과 실업문제 해결이란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렵다.

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 과정등을 거쳐 어느 쪽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둬야 할지를 결정,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 좋은 말 감사드린다.

정리 = 차진용기자

[참석자 명단]

조우현 (曺尤鉉)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장

이원덕 (李原德)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사회 : 장현준 (張鉉俊)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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