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 영전에]강원용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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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산 김대거종사께서 열반하셨다는 소식은 종교적으로만 본다면 축하드릴 일이지만 우리와 다시는 몸으로 함께 사귀고 담소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 분을 처음 뵌 것은 종법사로 계시던 때로 익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였다.

초면이지만 마치 오래 사귀어 온 친구 같은 느낌이었기에 모든 격식을 버리고 아주 소탈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시종 얼굴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미소를 멈추지 않으셨다.

내가 두 번째로 종사님을 뵙게 된 것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으로 당선된 후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93년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세계종교인평화회의 총회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그 분은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원불교 간부들을 전부 불러 우리가 힘을 합해 강원용 목사 일을 돕는다는 약속으로 손 잡고 사진을 찍자고 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후 종법사를 그만두신 후에도 늘 안부를 들어왔다.

나는 기독교를 위시해 꽤 많은 종교의 높은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과 만나고 협력해왔으나 내 머리 속에 아주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분을 말하라면 첫째로 이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원불교와는 다른 기독교 목사지만 원불교와 그 신도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어떤 기독교 목사가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을 찾아가 개종하고 제자가 되겠다고 하니 나의 제자가 되려거든 지금까지 믿어온 기독교를 떠나지 말고 되라고 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듯이 내가 아는 종교 중에 가장 열린 종교다.

21세기 종교다원화 시대에는 닫힌 종교는 결코 좋은 역할을 할 수 없고 열린 종교들이 함께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원불교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열린 종교이기 때문에 흔히 종교에서 보는 추잡한 패거리 싸움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뿐 아니라 원불교 신도들의 생활태도는 참으로 본받을 점이 많다.

이런 의미에서 오는 21세기를 향한 원불교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거는 한 사람으로서 종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을 매우 아쉬워한다.

물론 그의 유능한 후배들이 앞으로 잘해가리라 믿으며 나 자신도 비닐하우스 속에서 담소하던 때의 그 훈훈한 인간애, 신앙에 나타나는 맑은 표정, 비권위적인 지도력을 깊이 마음에 간직하며 살고자 한다.

강원용 목사(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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