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나의 이복형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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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랑 ‘나의 이복형제들’
실천문학사, 300쪽, 9000원

<본문 54~55쪽>

어둠 속에서 별안간 까치가 다시 날갯짓을 시작했을 때, 나는 깜뎅이의 전기장판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기장판은 냉랭했다. 등을 대고 눕자 냉기가 등가죽을 할퀴었다. 제 스스로는 온기를 발하지 못하는 것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냉랭함에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나의 동거인의 몸이 왜 자꾸 왜소해지는지, 그가 웅숭그리고 있는 횟수가 왜 점점 더 빈번해지는지, 알 듯도 했다. 벽도 문도 없이 그저 바닥만 있는 다락방, 이 방은 방이 아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거리에서 묻힌 흙먼지를 털어내고 들어가 지친 등을 누이는 방은 이런 것이 아니다. 괴로운 날에는 벽에다 머리를 찧기도 하고, 배가 아프면 데굴데굴 구를 수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문지방에 걸려 넘어진 핑계로 울어버릴 수도 있는 방, 방이란 그런 것이다. 벽도 문도 없이 바닥만 있는 방, 관처럼 비좁은 이 다락방 위에서는 그 누구라도 다리를 곧게 뻗을 수 없다. 키 크기와 등의 너비에 딱 맞추어서 제작된 이 방에서는 그 누구라도 두 팔을 쫙 벌리고 세상을 안아볼 수 없으리라. 그런 무모한 시도를 했다가는 그 길로 곧장 떨어져버릴 테니까. 저기, 저 아래 시멘트 바닥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 비좁은 방에서 떨어지지 않고 지내려면 두 팔을 몸에 찰싹 가져다 붙인 채로 똑바로 누워 있어야만 한다. 관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시체처럼.

나는 불쑥 전기장판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물론 이 장판의 사용권은 나의 동거인에게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했다. 온도를 25도에 맞췄다. 전원 버튼에 빨간 불이 깜빡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다시 전기장판 위에 누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나의 등과 나의 허리를 지나 나의 발꿈치 밑으로 전기가 퍼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온기를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예상시간보다 더 많이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한 평 남짓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 나는, 전기라든가 온기와 같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나 사물의 힘을 빌려 내가 따뜻해지기까지의 시간을 측정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벽도 문도 없이 달랑 방바닥만 있는 방에는 쉽게 온기가 스며들지 않았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내 몸은 데워지지 않았다. 나는 깔깔,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런 바람을 가졌던 내 자신이 못 견딜 만큼 우스웠다.

그렇다. 나는, 전기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둥지에는 전기로 냉기를 유지하는 냉동창고와 전기로 따뜻해지는 전기장판이 있다. 냉동창고와 전기장판, 이 두 가지 제품만 놓고 봐도 전기가 가지는 주요한 특성을 알 수 있다.

전기는 냉기와 온기 사이의 간극을 쉽게 극복한다. 이곳 사람들은 전기의 이러한 특성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들의 습성에는 어딘가 전기를 닮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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