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계적 웃음거리 된 대한민국 망신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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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한민국 국회가 세계적 웃음거리가 됐다. 민주주의가 뭔지, 다수결이 뭔지도 몰라 격투를 벌이는 미개국 취급을 했다. 미국 NBC 방송은 한국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을 보여주면서 ‘킹 오브 더 힐’(몸싸움 에피소드가 많은 만화극) 같다고 폭소를 터뜨렸다. 영국의 BBC, 미국의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집단으로 싸우는 한국 정치인들’, ‘레슬링 경기장으로 변한 한국 국회’를 조롱거리로 소개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민주적 절차의 무시다. 국회의원이 회의장에 입장하는 것마저 봉쇄됐다. 외부 집단이 국회에 난입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승만 정부 시절 백골단·땃벌떼 등이 설친 이후로는 군사정부에서도 보지 못한 일이다. 본회의장에 참석한 의원이 투표하는 것도 방해 받았다. 그런 일을 벌이고도 법을 따져 무효 소송을 벌이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민주당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장외투쟁을 벌이겠다고 한다. 회기가 끝난 뒤 국회의원의 사퇴는 국회의장이 승인해야 한다. 김형오 의장이 과연 사표를 받아들일까. 당내에서조차 ‘정치적 쇼를 하면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온다. 민주당이 장외로 나가 수호하겠다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가. 앞으로는 무조건 소수 의견에 따르도록 국회법이라도 고치자는 건가.

한나라당은 ‘국회 선진화 TF’를 만든다고 한다. 국회 파행을 막을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TF를 만들어 해결할 일인가. 국회 내 난투극이 제도가 없어 벌이진 일은 아니다. 해답은 외국 언론의 보도만 읽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24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태의 배경을 ‘정치적 합의에 주안점을 두는 한국적 특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의 눈에는 다수결이 당연하다. 이번에도 필요 이상으로 ‘합의’가 강조됐다는 시각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결이다. 합의를 중시하는 건 거기에 덧붙여진 한국 정치의 미덕일 뿐이다. 이런 정신은 잘 살리면 의회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기본마저 망각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