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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명동' 시장바닥 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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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패션 1번지' 명동에서 의류상권이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 패션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내셔널 브랜드 의류.구두.액세서리들의 품격높은 전시장격이던 명동이 관련 업체들의 잇따른 매장철수로 '시장화' 하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올초와 비교할 때 이미 조이너스 (나산).예거 (신원).아이덴티 (제일모직).톰보이 (성도물산).옴파로스 (세계물산).금강제니아 (금강).코코리따 (이랜드).제임스딘 (좋은 사람들).미네라인 (에스콰이아패션).슈발리에 (고려) 등 브랜드 의류.구두업체가 자취를 감추거나 매장수가 줄었다.

대신 들어서고 있는 것이 화장품 전문점.속옷 할인매장.시장의류를 골라 판매하는 편집매장 등이다.

명동의 상당부분이 '할인매장' '시장옷' , 심지어 '땡처리 매장' 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나산 마케팅지원팀 마진원씨는 "부도후 임대료가 비싼 명동 매장을 일차적으로 철수시켰다" 며 "의류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매출이 오르지 않는 매장은 모두 거둬 들이는 추세" 라고 말했다.

실제 명동 매장의 임대료는 권리금.보증금이 각각 수억원에 월세 수천만원선이어서 제품을 판 이익금으로 임대료를 낼 수 있었던 곳은 경제난 이전에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명동에 위치한 매장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각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이른바 '이미지 숍' '안테나 숍' 의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에 의류업체들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이곳 매장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사치' 가 된 셈. 이에 따라 명동 상가의 임대료도 급격히 떨어지고 빈 점포마저 늘고있다.

명동상가번영회의 한 관계자는 "권리금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임대료도 통상 20% 이상 낮아졌다" 고 들려준다.

코리아극장 맞은편 전 (前) 이랜드그룹 '로이드' 매장 (17평) 의 경우 보증금 7억원에 월세 1천3백만원이던 임대료를 보증금 3억원, 월세 1천만원까지 낮춰 내놓았으나 아직 임차자가 없어 빈 점포로 남아 있다.

명동의 중심지인 구두거리를 비롯해 골목마다 비어있는 점포가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브랜드 의류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건물주들이 이젠 업종과 성격을 가리지 않고 점포를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쌍방울의 한 관계자는 "속옷 하청업체들이 납품사 디자인을 도용해 만든 제품들이 땡처리 업자 등을 통해 시중에 많이 나돌고 있다" 며 "명동 속옷 할인매장의 상당수도 이런 곳" 이라고 전한다.

그나마 보증금을 받고 임차자를 들이는 것은 나은 편. 소위 '일수매장' 이라는 것까지 등장해 평당 5만~6만원을 받고 하루 단위로 매장을 빌려주는 곳까지 있다고 이곳 상인들은 귀띔한다.

오후 8시부터 좌판들이 크게 늘어나 명동거리를 채우는 것도 최근의 달라진 명동 모습. 리어카 한두 개에 스카프.반지, 간단한 의류 등을 파는 좌판상들은 상가가 문을 닫으면 조용했던 명동의 밤을 불야성으로 만들고 있다.

명동 사무실로 출퇴근하고 있는 엘칸토 마케팅팀 장경숙 (張慶淑.33) 씨는 "명동의 변화가 패션산업의 어려움과 경제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서글프다" 고 말했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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