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포기는 안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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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야의 가파른 대치정국이 점입가경 (漸入佳境) 이다.

마치 60, 70년대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야당이 여당으로 옮긴 의원들의 얼굴사진을 영정 (影幀) 으로 만들자 여당에선 검찰고발 (명예훼손) 얘기가 나왔다.

한나라당은 11일부터 지방 장외투쟁으로 들어갔다.

여당은 드디어 "세풍 (稅風) 의 몸통" 이라며 대통령후보였던 야당총재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국회는 이틀째 헛바퀴가 돌았다.

지난 여름의 '식물국회'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국회가 정상화돼야 하는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여야가 싸울 때마다 국회를 내팽개치는 나쁜 습관은 21세기의 문턱에 선 이제 소멸시켜야 한다.

원칙뿐 아니라 상황도 급하다.

경제.안보.개혁 등에서 국민은 시급한 현안에 눌려 있다.

공장이 멈춰서고 실업이 2백만을 육박하고 있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신속히 마치고 밀도 있는 예산심의.경제대책 강구에 돌입해야 한다.

내년엔 재정적자가 20여조원으로 치솟을 판인데 이런 나라살림을 국회가 따지고 챙겨야 할 것 아닌가.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서 금강산관광 등 대북교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회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검찰의 사정은 공정한지, 청와대의 '기획사정' 은 아닌지, 사정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등등도 국회에서 논의돼야 한다.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는 이를 위한 좋은 장 (場) 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점 외에 장외투쟁의 장래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국회 보이콧의 장기화는 의원들의 불만을 심화시켜 으레 야당내부 분란으로 이어졌다.

특히 대부분 여당체질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장외투쟁에 며칠이나 결속할지조차 의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정기국회를 외면하고 장외투쟁으로 나선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은 정권이 사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형평성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여권이 사정을 악용해 야당의원 빼내기를 계속하는데 그런 국회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항변도 한다.

정권의 '사정 (司正) 불균형' 은 국외자들도 직감적으로 느끼는 사안이다.

그러니 여권은 야당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여권은 처음부터 "야당 대선자금에 대한 조사가 아니다" 고 했으니 국세청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가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인지를 야당과 국민에 설명해야 한다.

여당의원 비리에 대한 그 무성했던 소문이 어떻게 됐는지도 석명 (釋明)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특검제는 왜 안되며 앞으로 여당대선자금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면 어떻게 처리하겠다고 분명히 밝혀야 여권의 언행에 설득력도 생기고 야당의 원내복귀를 압박하는 여론에도 힘이 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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