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정국]공세 고삐죄는 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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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은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 기자회견에 대해 "한마디로 적반하장 (賊反荷杖)"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선 서상목 (徐相穆) 의원의 당직사퇴로 李총재가 '대화정치론' 을 들고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했지만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입맛이 쓴 표정이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국가 조세권 유린은 악성적인 권력형 부패사건인데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도 '미안하다' 는 말 한마디 안하는 게 이해할 수 없다" 고 했다.

청와대측은 李총재를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할 인사' 로 규정하는 한편 그가 제기한 여권의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인 해명작업도 병행했다.

자칫 사태가 대선자금 공방의 양비론 (兩非論) 으로 몰아가지는 것을 극력 경계하고 있다.

김중권 (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 "야당이 金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를 제기하려면 제도적으로 인정된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하라" 고 촉구했다.

제도화되지 않은 특별검사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한나라당이 이미 제출한 '金대통령 대선자금 등에 관한 국정조사권' 발동은 가능하다는 정면대응 방침을 시사한 것. 그는 또 金대통령 본인의 설명이라면서 "새 정치자금법이 발효된 지난해 11월 14일 이후 정상적인 절차 외엔 한푼도 받지 않았고, 그 전엔 일반관행에 따라 정치자금을 받았으며 선거자금 사용내역은 선관위에 쓴 대로 보고했다" 고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정이나 정치권 정화작업이 정기국회를 볼모로 잡는 이회창식 (式) 저항에 전혀 영향받지 않을 것" 임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핵심관계자는 "李총재의 기자회견은 자기 당에서조차 지지받지 못하는 가족회의에 불과하다" 고 치부하고 "李총재에 대한 정치적.법적 정화작업이 진행중" 이라고 흘렸다.

국민회의도 마찬가지다.

의원총회를 열어 "사정은 사정이고 국회는 국회" 라며 야당에 끌려가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하던 한화갑 (韓和甲) 총무조차 박희태 (朴熺太) 한나라당 총무와 접촉을 일절 끊었다.

원내 다수를 확보한 만큼 체포동의안 등 민감한 현안도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다음주 초 단독국회를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런 와중에 여권 핵심들이 이회창총재의 강경대응을 부추기는 '배후' 로 이기택 (李基澤.KT) 전부총재를 지목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李전부총재가 "내가 DJ를 이기는 방법을 다 알고 있다.

쎄게 (세게) 버텨야 한다.

DJ한테는 한번 쉽게 보이면 영원히 쉽게 보인다" 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KT는 95년 민주당 공동대표 시절 특유의 버티기와 진빼기로 金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한 적이 많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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