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의원의 농성현장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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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회적 분규와 갈등을 조정.해소하는 게 정치의 본질적 기능이다.

따라서 정치권의 (현대자동차 분규) 개입은 당연한 것이다. "

현대자동차 분규 타결 직후 정치권이 특정 사업장 분규에 개입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는 비난이 일자 당시 중재단을 이끌었던 국민회의 노무현 (盧武鉉) 부총재는 한 라디오 대담프로에서 이같이 항변했다.

그래서였을까. 盧부총재는 장기간 파업농성 중이던 만도기계 노조원들이 공권력 투입으로 해산된 직후인 지난 6일 서울 명동성당을 찾아가 텐트 농성 중인 비대위 노조원들을 격려하면서 또 한마디했다.

그는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데도 공권력을 투입한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유감스럽다" 며 "이후 만도기계 경영에 대해서는 출자전환을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을 것 같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회사와 재계가 당혹감을 나타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만도 모그룹인 한라그룹은 지난해말 부도 뒤 회생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盧부총재가 해산 근로자를 격려한 시간에도 미국 로스차일드사 회장과 한라 최고경영진이 10억달러 외자유치를 놓고 마지막 교섭을 벌이고 있었다.

집권 여당의 盧부총재가 노동문제와 근로자에게 애정을 갖고 관심을 표한 것은 박수받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농성 중인 근로자들을 찾아가 아무리 사견이라지만 '공권력 투입 유감' 운운하고, 나아가 출자전환을 거론하는 것이 기업회생과 사태해결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렇잖아도 盧부총재는 지난달 현대자동차 분규 때 노조에 지나치게 편향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협상에 참가한 인사에 따르면 처음 盧부총재 일행이 갖고 온 중재안은 정리해고란 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노조안과 거의 일치했다고 한다.

개별 사업장 노사문제에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법과 원칙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음은 법률가 출신인 盧부총재 자신이 잘 알 것이다.

때와 자리를 가려가며 말을 아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신동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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