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나우] 요즘 중국 출근 인사는 “잠복하셨어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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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국공내전 당시 첩보전을 그린 ‘잠복’의 포스터.

중국 국공내전(1945~49) 시기의 첩보전을 다룬 드라마 ‘잠복(潛伏)’이 대륙의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국공내전은 45년 일본이 항복하고 패퇴하자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륙의 패권을 걸고 벌였던 전쟁이다.

4월 1일 베이징(北京)위성TV 등 4개 방송사를 통해 첫 전파를 탄 이 드라마는 직장인들 사이에 “잠복했느냐(잠복을 보고 사내 정치를 잘하고 있느냐는 뜻)”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4월 말 30회분이 끝나자마자 우한(武漢)TV 등 지방 방송국에서 앞다퉈 재방송을 내보냈다. 인터넷 종합영상 포털사이트인 ‘Ku6닷컴’에선 열흘 만에 5000만 명이 접속했다. 지난달엔 잠복의 아류 드라마들이 선보이기도 했다. 신문·방송들은 이 드라마가 촉발한 사회 현상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기존 첩보물과 달리 국공 양측 인물들의 고뇌를 균형감 있게 그려 완성도를 높인 점이 특징이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으로 교류가 많아진 시대 변화상을 반영한 것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또 국민당 첩보조직인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군통)에 잠입해 암약한 공산당 첩자 쉬쩌청(徐則成)을 주인공으로 구성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했다고 신보(信報)등은 분석했다. 국공 첩보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리창(黎强)이 쉬쩌청의 실제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리창은 39년 충칭(重慶)에서 활동하던 공산당 남방국 첩보조직인 중앙특과(中央特科)에 배속돼 국민당에 침투했다. 그의 존재는 남방국 서기·부서기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둥비우(董必武)만이 알고 있었던 특급 기밀이었다. 리창은 공산당 첩자 가운데 최고위직인 국민당군 부사령관에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49년 국민당군이 공산군에 쫓겨 패퇴할 때 대만으로 건너간 리창은 저우언라이의 밀명을 받고 탈출했다. 국민당 총통 장제스는 “1만 명이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1명의 첩자를 골라내는 게 더 중요하다”며 피비린내 나는 색출전을 벌였다.

중국도 수만 명에 이르는 국민당 첩자를 찾아내느라 한바탕 내홍을 겪었다. 대만에선 이 드라마의 흥행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 황칭룽(黃淸龍) 부사장은 “잠복의 영향으로 쉬쩌청 같은 첩자들이 대만으로 계속 잠입한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앞으로 양안 교류가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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