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뒤 비실대던 은행들 ‘링거 주사’ 뺄 정도는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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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지수가 기업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에 1470선을 돌파했다. 지난해 9월 25일 이후 최고치다. 20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장을 마친 외환 딜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채권안정펀드·자본확충펀드·금융안정기금 조성, 하이브리드채권 발행 규제 완화, 원화 유동성 비율 계산 방식 변경…. 지난해 9월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금융당국이 쉴 새 없이 내놓은 조치들이다.

공통점은 ‘은행의 몸 만들기 프로그램’이라는 점. 이 가운데 자본확충펀드는 금융당국이 은행에 강제로 할당했지만 아직 한도를 다 쓰지 못했다. 금융안정기금은 국회 동의안까지 받아놨지만 시장에 나와보진 못할 듯하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에 은행들에 굳이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은행이 벌떡 일어나 뛸 정도로 몸이 좋아진 건 아니다.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는 경기 움직임에 따라 다시 오를 수 있다. 순익 규모가 늘어도 수익성 지표는 갈수록 나빠지는 문제도 남아 있다.

◆건전성 급속 개선=금융당국과 은행권은 6월 말 기준으로 연체율이 크게 떨어진 데 고무돼 있다. 최성일 금융감독원 건전경영팀장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연체율 하락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물론 6월의 연체율엔 함정이 있다. 은행들은 실적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분기나 반기엔 ‘연체율 특별관리’에 들어간다. 연체가 오래된 채권은 아예 못 받는 돈으로 분류하고(상각), 부실채권을 자산관리공사 등에 넘기며, 빚 상환도 열심히 독촉한다. 하지만 최 팀장은 “반기라는 특성을 감안하고서도 6월의 연체율은 예상보다 낮은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특히 신규 연체가 줄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신규 연체는 올 1~2월 월 4조원대로 급증했으나 3~5월엔 2조원대로 줄어든 데 이어 6월엔 1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향후 연체율이 더 떨어질 여지가 생긴 셈이다. 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예대율, 원화와 외화의 건전성 비율도 거의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순이익도 증가세=지난해 4분기에 국내 은행은 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일부 은행은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 1분기에도 은행들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은행이 적자를 낸 가운데 순이익 규모가 8000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2분기엔 달라졌다. 기업·외환 등 대다수 은행이 순이익으로 돌아선 가운데 전체 은행권 순이익 규모는 1조3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올해 실적이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가 최근 전망치를 확 높였다. 푸르덴셜증권 성병수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받은 고금리 예금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하반기로 가면서 이자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며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면 내년엔 지난해 상반기 수준의 이익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심은 금물=2분기에 은행들이 괜찮은 실적을 낸 것은 부실채권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이 줄고, 현대건설 주식의 매각 등 영업외이익이 생긴 것도 작용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늦어지거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이 커질 경우 은행들의 운명은 다시 기울 수도 있다. 한화증권 박정현 애널리스트는 “3분기엔 은행들의 순이익이 늘어나겠지만 4분기엔 기업 부실에 따라 대손충당금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NIM은 역대 처음으로 올 1분기에 1%대로 떨어진 데 이어 2분기엔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금리로 돈을 빌려 대출해주다 보니 마진이 크지 않은 탓이다.  

김준현·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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