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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일하고, 늙고 … 그의 삶 자체가 사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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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최광호(사진)는 셔터를 많이 누르는 사진가다. 자기가 찍은 사진을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찍는다. 이런 식이다. “사진이 될 때 어떻게 하면 되지?”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바로 그때가 많이 찍을 찬스야.”

그런데 사진가에게도 운동선수처럼 슬럼프가 있다. 이번에는 안 된다고 투덜거리면 “작업은 작업으로 풀어야 해”라고 말한다. 잘돼도 못돼도 사진가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결국 최광호는 ‘삶 자체가 사진’인 사람이다. 그는 30여년 삶 자체를 찍었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이다.

최광호의 생명은 두 갈래 흐름을 따라 흐른다. 하나는 사진 본연의 기능으로 정직하게 찍어보는 생명이다. 그게 ‘가족’ 시리즈다.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통해서 생명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려 했다. 태어나고, 밥 먹고, 공부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애 낳고, 일하고, 죽어가는 삶의 신산한 모습을 30년 동안 찍었다.

특히 그는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할머니의 몸이 한줌의 재로 변한 상실감으로부터 시작된 그 사진은 장인·장모와 아버지, 외삼촌 등 피붙이를 피사체로 해 짠하다.

최광호(53)씨는 ‘가족’ 연작이 그렇듯 세상 만물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감동하기 위해” 찍는다. 그에게 시들지 않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은 생명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순환’ 연작은 꽃의 일생을 따라가며 생명의 근원을 탐구한 작가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생명의 순환’, 50.8X61㎝, 포지티브 프린트, 2008.

또 한 갈래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연작이 ‘포토그램’ 시리즈다. 태양광이나 확대기 빛을 이용한 일반적인 포토그램의 실험과 미학을 전부 다룬 위에 ‘최광호 만의 철학’, 즉 몸과 죽음과 삶을 얹는 작업이다. 인화지 위에서 물체의 위치를 확인하고 구성하며 이루어지는 일반적 ‘포토그램’과 달리, 통제불능인 몸과 죽음을 다루는 최광호의 사진은 당연히 실패작이 많다. 실패를 이기는 방법은? 최광호의 방식대로 많은 양의 작업으로 해결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늙고, 죽어가면서 스스로 존재 증명을 한다. 사람은 죽고, 꽃은 진다. 그들은 모두 소멸될 것이고 끝내는 망각의 강을 건널 것이다. 이 대목에 생각이 미치면, 오늘 죽어가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마음이 든다. 최광호는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에 ‘포토그램’으로 영원히 사는 생명을 부여한다. 가족이 그랬고, 풀이나 꽃들이 그랬고, 사라지는 얼음과 물의 흐름까지도 그렇다.

언젠가 최광호는 이런 말을 했다. “죽음은 모든 것과의 단절이 아니라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믿고, 죽음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지요. 이 얘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장인 어른이 돌아가시고 관을 묘지에 내렸지요. 그 관의 옆자리에 장모님을 위한 빈 관을 함께 묻으며, 관마다 한쪽 끝 모서리에 둥그렇게 구멍을 뚫어놓은 것을 봤어요. 이분 저분 어른들께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 노인 한 분이 일러주시더군요, ‘둘이 연애하라’고 뚫는 것이라고요. 그 구멍은 사후 세계를 믿는 징표이고, 두 사람의 영혼이 오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최광호가 몸과 죽음과 삶을 얹어 만든 ‘포토그램’은 이 세상의 모든 삶, 아니 무생물까지도 끌어안고 있다. 꽃과 풀과 물로 나아가는 그의 ‘포토그램’ 연작은 ‘가족’의 또 다른 얼굴이다. 모두 최광호의 작업실에서 함께 살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모습이다. 그것이 사람이면 어떻고, 풀이면 어떠며, 물이면 또 어떠랴. 생명, 영원히 죽지 않은 생명을 부여할 줄 아는 사진가와 함께 사는 것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는 일은 헛된 것이다. 그는 오늘도 어두운 암실에서 생명의 순환을 느끼며 “인생은 이런거야”라고 자문자답하고 있다. 

최건수<사진평론가>

◆최광호=195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30여 년 사진가로 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작가는 “나의 셔터가 심장박동과 같이 다가와 나를 늘 새롭게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이름지은 ‘광호 타입’은 죽음으로부터의 거듭남을 말하는데 사람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끈질긴 되새김, 죽음으로부터 환원되는 흙으로의 다가감을 표현한 것이다. 대부분 사진가처럼 남에게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그답게 정면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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