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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인 성공시대] 남재원 골드&해시계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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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원 대표는 요즘도 현대백화점 서울 미아점 매장의 좁은 수리 공간에서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보낸다. 그는 “고장난 시계가 돌아갈 때의 쾌감은 산 정상에 올라 함성을 지를 때의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재깍재깍 시계 소리를 40년 넘게 듣고 살아온 ‘시계 수리공’ 남재원(59)씨. 시계 톱니바퀴처럼 흐트러짐 없는 외길 인생 덕분일까 그는 요즘 교수님으로, 명장(名匠)으로, 사장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은 현대백화점 서울 미아점의 입점업체 ‘골드&해시계’ 를 운영하는 그를 ‘7월의 기능한국인’으로 20일 선정했다.

“예나 지금이나 ‘냄새 나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시계 만지는 게 재미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에 기꺼이 몰두하라고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전남 순천 빈농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 대표는 17세 때 친척의 소개로 동네 자그마한 시계점에 발을 들였다. 가난한 소년의 눈에 당시 부의 상징이던 시계가 유독 끌렸는지, 많은 기술 중에 시계 수리에 흥미를 느낀 것. 2년간은 바닥 물청소를 하고 주인 심부름을 하느라 시계 한번 제대로 뜯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바로 위 선배가 그만두고서야 기회가 생겼다. 탁상시계를 조립하는 법부터 시작해 차차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만져볼 수 있었다. 1년을 바짝 배우면서 서울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서울에 먼저 자리잡은 고향 친구가 ‘믿을 만하다’는 보증을 서줘 한 백화점의 시계수리 기사로 취직이 됐다.

“시골에서 싸구려 시계만 만지다가 월급의 세 배 가까이 되는 고급시계를 보니 처음엔 손이 떨리더군요.”

솜씨를 인정받으면서 당시 공무원이던 형보다 월급을 50% 더 받았다. 1981년에는 롯데백화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좋은 조건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파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면서 독립을 꿈꾸게 됐다. 26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92년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지금은 현대백화점)에 5㎡(1.7평)쯤 되는 좁은 공간을 임대해 시계수리점을 냈다. 2001년에는 현대백화점 서울 미아점에 판매까지 하는 분점을 열었다. 점포가 둘이 되자 신촌 본점은 공대를 나와 직장에 다니던 큰아들에게 올 1월 맡겼다. 작은아들은 분점 운영을 돕는다. 대물림을 하고 싶던 터에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두 아들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아들까지 직원 2명인 분점 ‘골드&해시계’는 귀금속까지 취급해 연간 4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이재에 밝지 못해 재산을 많이 불리진 못했지만 남들 사는 만큼 산다고 자족한다.

남 대표는 틈틈이 연구한 것을 갖고 특허도 두 건 냈다. 시계 부속을 분리하고 결합하는 데 쓰는 ‘마스터 펀치’와 시계 유리와 뒤판을 닫을 때 쓰는 ‘휴대용 시계 압축기 조립공구’다. 현장의 불편을 덜려고 머리를 짜다 보면 작업 공구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2005년에는 정부가 인정하는 ‘시계 수리 명장’이 됐다.

후진 양성에 뜻이 남다른 남 대표는 2001년 동서울대학이 개설한 시계주얼리학과의 후원회를 결성해 4년간 지원했다. 학과생들에게 기술지도를 하다가 올 초에는 ‘겸임교수’까지 됐다.

“시계 수리는 인내를 갖고 손으로 직접 만져야 하는 미세하고 특화된 기술이어서 손재주 있는 젊은이들에게 권할 만한 직업이에요. 요즘엔 비싼 패션시계의 수요층까지 두터워지면서 ‘시계는 사양산업’이라는 말도 사그라지고 있습니다.”

그는 후학뿐 아니라 불우이웃 돕기에도 열심이다. 한 번은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본 여섯 살 난 심장병 어린이가 계속 눈에 밟혀 750만원이 들어있는 적금통장을 한국심장재단에 건네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이 재단을 통해 8명의 심장환자 수술비를 지원했다.

홍승일 기자



‘이달의 기능 한국인’=국내 우수 기능인의 성공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려고 2006년 8월 정부가 제정한 월례 포상 제도. 한국산업인력공단 6개 지역본부와 18개 지사, 노동부 지방 관서에 서류를 갖춰 응모하면 된다. 웹사이트(www.hrdkorea.or.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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