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자체 명품 개발, 고추장 덕 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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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서울 본점과 강남점, 부산센텀시티점에는 ‘트리니티’란 명품 매장이 있다. 트리니티는 신세계가 자체 개발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백화점이 다른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생산·개발까지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트리니티 탄생의 주역은 이 백화점 패션연구소 강명란(42·사진) 팀장. ‘백화점이 직접 만드는 명품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은 그는 2006년 3월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피렌체. 그는 패션쇼에서 만난 외국 디자이너들이 “명품 브랜드의 니트를 수십 년 동안 만들어온 장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일러준 공장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하지만 공장은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수십 개 명품 브랜드를 수입하는 한국의 백화점에서 왔다”고 말해 봤지만 “보여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강 팀장은 “패션 담당 직원인데 해외 트렌드를 조사해 리포트를 써야 하니 잠시만 둘러보겠다”고 설득한 끝에 간신히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장에선 50~60대 장인 수십 명이 한 땀 한 땀 바늘로 니트를 짜고 있었다. 이들의 세심한 손놀림으로 만들어지는 제품에는 각종 명품 브랜드들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강 팀장은 ‘최고급 원료를 골라 이곳에서 만든다면 백화점 자체 명품으로도 승산이 있겠다’ 싶어 제조의뢰 계약을 제안했다. ‘신세계’라는 업체를 낯설어 하는 공장장에게 “한국에서 월마트를 인수한 회사”라고 소개도 해봤다. 그러나 공장장은 “한국과 대만은 복제품이 많아 의심스럽다”며 거절했다.

실마리는 다른 곳에서 풀렸다. 강 팀장은 공장장의 딸이 한국에 여행을 온 적이 있어 관심이 많고 고추장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현지에서 국산 고추장을 구해 딸에게 선물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고추장을 보냈다. 공장장은 9개월 만에 마음을 열었다. “신세계의 니트를 만들어주겠다”고 허락한 것이다.

강 팀장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었더라도 당초 보낸 디자인과 다르면 몇 번이고 돌려보낸다. 그는 “우리 생각대로 제작되지 않은 제품을 여러 번 되돌려 보냈더니 어떤 장인은 ‘(스트레스를 받아) 옷을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명품 대접을 받으려면 이만 한 까다로움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강팀장의 생각이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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