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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사람 되려면 먼저 낮은 사람이 되라는 게 예수의 명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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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31면

외가 쪽으로 5대째 가톨릭 신자인 한 회장은 학자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한국 경제, 노동, 경제 윤리, 인권, 환경, 유럽학 등의 분야에서 한국어·영어·이탈리아어로 다수 논문을 발표했다. 최정동 기자

예수는 수많은 제자 가운데 12명을 특별히 사도로 삼았다. 그는 사도들에게 명령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오복음서 20:26) 사도들은 말귀가 어두웠다. 하느님 나라가 오면 높은 자리가 그야말로 ‘따 놓은 당상(堂上)’이라고 생각한 사도들은 도토리 키 재기를 했다. 성경은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루카복음서 22:24)고 전한다.

영혼의 리더<24>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홍순 회장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바울)와 다른 사도들 간에도 감정이 미묘하게 흘렀다. 바오로는 자신의 상대적 위상에 대해 상반된 기록을 남겼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코린토1서 15:9)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코린토2서 11:5)

히브리서는 “예수도 사도” 표현
사도란 무엇일까. 사도(使徒·apostle)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도 사도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 여러분, 우리 신앙 고백의 사도이며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3:1) 사도는 사지(死地)로 내던져진 사람이기도 했다. 바오로와 12사도들은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했다. 어쩌면 감투를 바라고 예수를 따라나선 제자들에게 사도직은 너무나 버거운 것이면서도 원래의 바람보다 훨씬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현대 가톨릭 교회는 평신도의 사도직을 강조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Apostolicam Actuositatem)’은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책이 있지만 그 사명은 오직 하나뿐이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성화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그리스도한테 받았다. 평신도 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며 교회와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자기 나름으로 완수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는 전국 평신도로 구성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라는 협의체가 있다. 1968년에 결성된 조직으로 ‘내 탓이오 운동’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 ‘똑바로 운동’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 등의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 단체는 84년 103명의 한국 순교성인이 탄생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 협의회의 회장은 한홍순(65)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다.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학사),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박사)를 졸업한 한 회장은 한국외국어대에서 36년간 재직하며 대학원장·무역대학원장·상경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 평신도뿐만 아니라 교황청을 대표하는 역할도 맡아 왔다. 교황청 국제감사위원이자 평신도평의회 위원인 한 회장은 각종 국제회의에서 교황청을 대표한다. 상훈으로는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 기사(교황청)와 녹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한홍순 회장을 14일 서울 명동에 있는 가톨릭회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평신도도 사도직에 동참한다는 것은 평신도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높고 낮은 것을 따지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어느 틈엔가 자리 잡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에는 제도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에 주교는 12제자를 지칭하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입니다. 좁은 의미에선 그런 구별이 있지만 교회에서 높낮이는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되려면 낮은 사람이 돼라’는 게 예수님의 명령이며 예수님 자신이 낮은 데로 임하셔서 낮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교회는 전부 낮은 사람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12사도를 뽑았으며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임명했습니다.
“대통령과 일반 국민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며 투표할 때에는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한 표만 행사합니다. 성직자·수도자·평신도는 모두 사도입니다. 하는 일이 다를 뿐 높낮이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다른 제자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모든 백성은 하느님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공동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선포하며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사도의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원래 가르침을 다시 환기시켰습니다.”

-공의회는 무엇입니까.
“공의회는 전 세계 주교들이 모여 교회의 모든 관심사를 논의하는 회의입니다. 공의회는 21번 개최됐습니다. 교회의 2000년 역사에서 100년에 한 번꼴로 개최된 셈이죠. 올림픽을 서울에서 하면 서울 올림픽이라고 하듯이 공의회가 열리는 장소에 따라 공의회의 이름을 붙입니다.”

-평신도도 공의회에 참가합니까.
“62~65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경우 평신도는 참관인 자격으로 참가했습니다.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주교만 4000명이 훨씬 넘기 때문에 다 모여서 회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3~4년에 한 번 250명가량의 주교 대의원들이 모입니다. 주교대의원회의에 3회 참석한 바 있습니다. 평신도가 자기 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기 때문에 공의회나 주교대의원회의에서 평신도가 투표권이 있느냐 없느냐는 상징성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한국 가톨릭은 평신도가 세운 교회
-주교대의원회의는 종교나 그리스도교·가톨릭 교회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미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보다 많은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며 도전이 심각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입니다. 세계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를 살펴봅시다. 1784년 수립된 한국 가톨릭 교회는 유일하게 평신도가 세운 교회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사상은 기득권 문화와 마찰했습니다. 종과 주인이 함께 자리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신앙 현장에서 일어났죠. 100년 이상의 박해시대가 계속됐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씨를 말리려고 했는데 수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한국 교회는 뿌리 뽑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바탕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를 믿기 때문에 낙관적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은 죽었습니다. 세상의 힘에 당했습니다. 제자들이 저항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했습니다. 부활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합니다. 여러 현대적 상황이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도전을 이겨내고 한걸음 더 나아가는 교회로 성장할 것이며 세상도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평신도 성인 많이 나오도록 교황에게 건의
-평신도와 성직자 간의 갈등은 없습니까.
“부모자식, 형제자매 간에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갈등의 전제는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 갈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갈등이라기보다는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성녀는 주로 성직자·수도자 중에서 나오는 게 일반적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성녀 103분 중 성직자는 11분에 불과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하느님께 갈 수 있는데 거룩하게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성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평신도 성인이 많이 나와야 평신도들이 본받을 모델이 많아진다고 교황님께 건의를 많이 했습니다.”

-평신도 단체끼리 대화하면 종교나 교단 간 갈등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오해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개신교에 대해 가톨릭은 ‘그리스도교의 다른 교회’라고 부릅니다. ‘프로테스탄트’‘갈라진 형제’라는 표현도 이제 쓰지 않습니다. 같은 하느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 때문에 화합하고 일치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신도 수가 압도적이라 일치를 강조하면 ‘가톨릭 패권주의’나 ‘흡수 통합’의 의구심을 일으키지는 않을까요.
“완전한 일치를 위해서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의 수위권이 일치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수위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며 열린 마음으로 더 대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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