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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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실제의 위기이든 감지 (感知) 된 위기이든, 오직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 " 일찍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현상유지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지닌 사회지도층을 의식하고 한 말이다.

그렇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지도층이 위기의식에 충만할 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변화와 개혁이 가능할 것임이 틀림없다.

지난 2분기의 경제성장률은 18년 만에 최저인 마이너스 6.6%로 곤두박질쳤고 실업률은 7.6%에 이르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난국이 시간이 경과하면 스스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경기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한다는 데에 있다.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지도층은 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당면한 경제난국 타개에 총매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외국언론과 필자가 만나 본 대부분의 주요 외국인사들은 한결같이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와 그 타결과정, 그리고 곧 실시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정치권의 경제청문회계획 등을 지적하며 정부와 우리 사회지도층의 위기의식과 개혁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지난해말 국제통화기금 (IMF) 긴급구제금융 신청 직후 우리사회에 충만했던 위기의식이 벌써 크게 약화된 것이 사실 아닌가.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현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결연한 의지를 되찾아야 한다.

이것만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과 구각 (舊殼)에서 벗어나는 용기와 지혜를 우리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당면한 경제난국도 다가오는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디지털혁명이 가져다준 정보화 관련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주요 선진제국이 취한 대폭적인 금융개혁과 금융자유화 조치는 각종 파생금융상품과 새로운 금융기업의 출현을 재촉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시장의 깊은 통합이 이룩되는 '금융의 세계화' 현상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이 금융의 세계화는 다시 이 지구촌을 '국경 없는 경제' 혹은 '무한경쟁' 시대로 줄달음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금융의 세계화 현상과 무한경쟁시대의 도래가 지닌 시사점을 면밀히 분석.이해했더라면 현재 우리가 당면한 경제위기도 미리 감지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금융의 세계화에 대비해 건전한 금융감독체계를 마련함과 아울러 은행을 비롯한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부실채권 정리 및 금융기관 구조조정 시책을 미리 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정치권은 정부가 뒤늦게 마련한 금융개혁법안들마저 제때 처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아자동차 처리도 오히려 지연시키는 쪽으로 몰고 갔던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일들이 지난해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다른 나라로 '전염' 되고 있는 와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대외 신뢰도를 더욱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정부는 세계화라는 세계경제사적 추세인 객관적 현상을 국가정책 목표로 내걺으로써 이 추세에 무조건 부화뇌동 (附和雷同) 하는 것으로 비쳐 세계화 관련 시책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마저 불러오게 된 점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과거에도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잘 넘겨 온 경험이 있다.

그래서 당면한 경제위기도 과거식으로 대충 넘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정부와 정치권이 당면한 경제위기의 특성과 심각성을 우선 깊이 인식하고, 이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정확히 알릴 수 있도록 각종 경제 교육.홍보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경제 구조조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비용분담에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이 적극 동참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명확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경제개혁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집행계획을 마련해 이를 국내외에 널리 홍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담은 '경제재건 3개년 계획' (가칭) 을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 모두가 위기의식을 되찾아 고통스런 이 경제난국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할 때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사공일(세계경제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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