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아시아자동차 유찰 배경과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아.아시아자동차 국제입찰이 유찰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그 배경과 향후 처리방침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 채권단이나 기아측은 공식 유찰방침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삼성측이 "당초부터 조건을 달지 않았으므로 제안서에 문제되는 내용이 없다" 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유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편 이번 입찰은 기준을 놓고 각종 혼선이 빚어지는가 하면 응찰내용이 사전에 구체적으로 공개되는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 국제적 신인도에 타격을 입혔고 투명.공정성에서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유찰배경 = '과도한 부채' 와 사무국측의 미숙한 입찰행정, 그리고 기아를 둘러싼 관련업체간 상호견제 등이 복잡적으로 작용했다.

채권단은 지난 7월 24일 당시 11조8천5백억원의 기아.아시아 부채에 대해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율 인하와 상환일정 조정 등으로 6조5천억원의 탕감효과를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대.대우.삼성.포드 등 응찰4개사는 이 정도로는 인수후에도 회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결국 입찰제안서에 '부채 탕감' 을 언급함으로써 논란의 소지가 된 것.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부채 원금을 그대로 인수하면 연간 이자부담만 1조원 가량 될 터인데 매출규모가 4조원대에 불과한 기아를 인수해 이자도 갚기 어렵다" 고 지적했다.

일부 업체들이 기아차 인수보다 상대방 견제에 목적을 두고 응찰했다는 점도 한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응찰가를 불과 주당 1백원으로 써 냈고, 포드는 입찰보증금를 아예 한푼도 내지 않아 자격을 상실해 놓고는 '입찰과정의 투명성 문제' 를 제기,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다.

입찰사무국의 미숙한 일처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입찰서류 작성지침에 '부대조건을 달면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고 명시하면서도 '심각한 불이익' 에 대해 분명한 방침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스스로 만들었다.

◇향후 처리일정 = 이른 시일내에 재입찰이 이뤄질 전망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입찰사무국과 협의해 가능한 한 낙찰조건을 단순화, 유찰을 방지할 수 있는 재입찰방안을 마련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종렬 (柳鍾烈) 기아관리인은 지난달 29일 채권단대표인 산업은행측에 오는 11일 재입찰공고를 내는 방안을 전달한 바 있다.

▶10일까지 채권단 부채조정규모 확정 ▶11일 2차입찰 공고 ▶21일 입찰서류 제출마감 ▶26일 낙찰자 선정공고 ▶26일~10월 26일 낙찰업체 최종실사 등의 일정으로 진행하겠다는 것.

사무국 관계자는 "이미 실사를 마친 응찰업체를 대상으로 재입찰하게 되므로 낙찰자 선정기간을 한 달 이내로 단축하는 게 가능하다" 고 설명했다.

재입찰이 실시될 경우 채권단은 재유찰을 방지하기 위해 새 부채탕감 조건을 제시하게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응찰업체들의 인수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부채탕감 규모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점 =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심각한 악영향이 예상된다. 또 기아 낙찰결과를 상정해 추진돼 온 빅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세계적 관심을 모아 온 국제입찰을 놓고 심사과정에서 난맥상을 보이는가 하면, 정치권이 개입설이 나오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유한수 (兪翰樹) 포스코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은 기아.한보의 신속한 처리 여부로 우리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면서 "잡음 없이 최대한 신속하게 입찰을 마무리지었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때문에 재입찰해도 공정성 시비가 재연될 소지가 있으며, 특히 1차때 최고점수를 받은 삼성이 아닌 다른 업체가 낙찰되면 법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차진용.이재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