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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서 합리적 대화 가르쳐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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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오히려 개인이나 공동체를 자극해 고뇌하고 자의식적으로 번민하면서 달구어지게 하는 순기능을 한다. 그러나 갈등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개인과 공동체 안에 균열이 생겨 비생산적인 일에 정력을 소진케 해 결국에는 파국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으로, 지금 한국은 GDP의 27%를 사회갈등비용으로 날리고 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는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린다.

국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오는 정쟁과 분열과 대결은 더 이상 방치하지 못할 단계까지 왔다. 이 위기를 인식한 이 대통령이 그 치유책으로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들어 갈등을 완화해 보겠다는 데는 별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그 갈등은 합리적 대화와 토론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배양할 기본 토양을 제공하는 교육훈련이 선행되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결국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60년이 넘도록 저마다 민주주의를 외쳐 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만이 아니라 사고방식이요 습관화된 행태라는 사실을 여태껏 간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민주적 사고가 체질화된, 다시 말해 갈등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줄 아는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은 시민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한낱 말장난일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는 설사 상대방의 주장이 옳더라도 지연·학연·혈연이 다르거나 자기 집단이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상대를 완전히 배척해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아예 모든 대화를 거부하려 하는 소위 ‘전체지향적’ 의사소통 행태가 체질화돼 있다. 이러한 태도는 대화 상대가 누구이건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대화를 중단함이 없이 단계적 토론과정을 거치면서 사안 하나하나씩 점진적으로 설득을 시도해 가는 ‘부분지향적’ 의사소통 행태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전체지향적 의사소통은 말 자체에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감정이나 태도를 짙게 섞어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감성적 의사소통은 욕설, 삿대질, 싸움질, 난투극으로 연결된다는 실증을 국회나 우리 사회 여러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다. 정치인들을 포함해 대다수 한국인은 상대를 부분부분씩 설득하고 이해시켜 가는 대화기법을 정규교육을 통해 훈련받아 본 적이 거의 없다. 민주정치란 대화와 토론을 통한 타협의 결정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교육과 훈련 없이 민주주의만 공허하게 외쳐온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올해 초부터 초·중·고 교육과정 개편을 진행해 왔다. 민주주의를 토착화하려면 선진국들처럼 초·중·고교에서부터 대화와 토론 기법을 익혀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존중할 줄 아는 합리적 대화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이 오늘날의 정치행태와 같은 미숙한 대화 문화를 답습해선 절대 안 된다. 민주적 사고와 행동이 몸에 밴 지도자와 민주적 시민이 없으면 민주제도의 열매는 결코 맺을 수 없다.

박명석 세계커뮤니케이션학회 자문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