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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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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내 개인적으로는 우리 경제가 앞으로 ‘떡시루형’으로 전개될 것 같습니다.” 일전에 어느 모임에서 한 민간 경제연구소 임원이 이런 우스개를 던졌다. 경기가 요철 모양으로 회복되는가 하면 다시 주저앉는 과정을 반복하리라는 예상을 가볍게 표현한 말이었다.

경기 변동은 돈과 직결된다. 다들 경기가 언제, 얼마만큼 오르내릴지 궁금해하며 경제학자들에게서 답을 구한다. 경제학자들은 이에 응해 U, L, W 등 알파벳으로 경기의 진행 방향을 그려 보인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할 일은 알파벳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다.

사실 경제학자가 경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다. 경기 부침을 맞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도 『맨큐의 경제학』에서 1965년 이후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추이를 보여 주면서 “경기 변동은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하다”고 인정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은 가장 많이 읽힌 경제학 원론 교과서 『이코노믹스』에서 “전문가 예측의 정확도가 체계적으로 비전문가 예측을 능가한다”는 의견을 일단 견지한다. 그러나 새뮤얼슨 또한 “정확하고 논란이 없는 예측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는 오래 걸릴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선 바 있다.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미국에서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급여를 받고 근무한다는 점은 경제 예측에 대해 뭔가를 알려 준다”고 말했다. 누구든 경기 예측에서 두 번 연달아 적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투자로 갑부가 될 수 있는데 그런 경제학자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의 역할은 ‘언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다’를 예언하는 게 아니라 ‘이런 위험 요소가 있는데 그대로 둘 경우 이런 경로를 거쳐 낭떠러지로 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 위험 요소를 들어내거나 우회로로 가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요즘 상황에서는 경기가 회복되는 듯하다가 다시 가라앉는다는 W형을 우려한다면 그 요인이 무엇이며 W형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정책 당국을 비롯한 경제 주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게 경제학자의 역할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쉬운 일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택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정책 대안의 좋은 사례다.

경제 예측이 빗나갔다는 이유로 경제학자와 연구소를 비판하는 일은 제대로 된 접근이 아니다. 훌륭한 경제 예측이란 일정 기간 후의 지표를 맞히는 게 아니라(맞힐 수도 없거니와) 과열되거나 지나치게 위축되게 할 요소를 적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지표에 건강한 변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앞으로 당신 건강이 나빠져 혈압이 이렇게 높아진다’고 말하기보다는 ‘이 처방에 따르면서 생활을 이렇게 바꿔야 당신 건강이 좋아진다’고 조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