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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넌 누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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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조병화의 이 한 줄짜리 시는 천 줄짜리 서사시보다 오래 읽힌다. 나를 공격하는 적의 정체가 알고 보니 나였다는 얘기다. 천적은 우리말로 '목숨앗이'라고 한다.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나는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독한 모양이다.

'결국'이란 부사엔 너무 늦은 깨달음, 돌이킬 수 없다는 회한의 감상이 묻어 있다. 아니면 이제 비로소 나를 알았으니, 남은 인생 제대로 살아볼 수 있겠다는 감사와 다짐의 뜻이 담긴 듯도 하다.

나를 아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조 시인은 생전에 자기의 본색을 밝혀냈으니 축복받은 인생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한번 물을 겨를도 없이 사람 무리 속에 허겁지겁 살다 생을 마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나는 많은 인격적 요소들의 집합이다. 모자이크 같다. 단색이 아니고 여러 빛깔이다. 요소들 가운데 일부는 서로 모순되고 충돌한다. 우월감과 열등감, 단순함과 다중성, 이기성과 이타성이 교차하고 넘나든다. 이질성과 다채로움이야말로 인간 내면의 특징이다.

남들이 알고 있는 나란, 이 중에서 선택된 몇몇 요소가 바깥으로 삐져나간,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여기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시각에 따라 똑같은 내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도 나의 정체 파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체성은 정체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한다. '과거의 나'가 '오늘의 나'와 다를 수 있다.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가 쌓인다고 자동적으로 '미래의 나'가 산출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정체성은 과거나 현재에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미래에 박아둔 꿈과 희망이 현재의 삶을 이끄는 내 정체성이다.

이렇게 복잡미묘한 정체성을 정치권이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다. 나도 잘 모르는 나를 남이 안다고 큰소리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그중에서 위험한 것은 현직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를 의심하는 접근이다. 이런 접근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국군에 군통수권자에 대해 항명을 부추기는 반(反)헌법적인 행태도 출몰하고 있다. 남의 정체성 문제를 건드릴 때는 엄격한 자제력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기가 자기의 천적이 될 수 있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