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서울역 그 식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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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함민복(1962~ ) '서울역 그 식당' 전문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밥은 때로 얼마나 유용한 핑계인지 모른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을 '그저 밥이 먹고 싶어서'라며 둘러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대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밥을 떠넣으며 무수한 말들을 함께 삼킬 수도 있으니. 그러나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마치 밥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와도 그녀는 알고 있으리. 그의 등에 어떤 사랑의 말이 적혀 있는지를.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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