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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해외에선 한국경제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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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수출이 3개월째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구조조정의 고통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은행퇴출 및 합병,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한남투신 고객투자원금 보상문제등 주요현안들의 처리가 국내외관심의 촛점이 되고 있다.

최근의 국내경제상황에 대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전문가들의 시각을 정리해 본다.

사회=권성철 본사전문위원.경영학박사

참여자=스티브 마빈 자딘 플레밍 서울지점 이사

함준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제임스 루니 쌍용템플턴투신 사장

^사회 = 구조조정에 IMF를 비롯 외국인의 역할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상반기중 외자유입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스티븐 마빈 = 직접투자는 미미한 수준이고 주식투자는 1~4월중 큰 폭의 순유입을 보인 후 순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제임스 루니 = 채권은 환율이 높았던 연초에 그런대로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가 13%로 내려왔고 환율변동에 대한 헤지 (위험을 상쇄시키는 거래) 비용을 감안하면 미국의 일반 회사채와 비교해 나을 것이 없다.

특히 국채 (외평채) 나 한전.산업은행의 달러표시채권이 최근 11%이상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국내채권을 살 이유가 없다.

2~3년후 한국경제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에 적극적인 주식투자를 기대하긴 어렵다.

환율이 1천3백원대로 하락한 것도 걸림돌이다.

^사회 = 정부는 외환위기이후 무역흑자 확대, 외환보유고 4백억달러등을 예로 들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마빈 = 무역흑자가 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

수입급감은 국내경기 침체를 반영하고 수출은 3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무역흑자 = 경제체질강화" 는 아니다.

금리가 내린 것도 유동성이 풍부하고 금융시장이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개입 때문이다.

^함준호 = 외환수급상의 불균형이 환율을 끌어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금리를 임의로 끌어내렸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경기침체로 자금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거의 없음을 감안하면 실질금리가 지나치게 높다고 볼 수 있다.

구조조정작업에 대한 불안심리가 가신다면 금리는 더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루니 = IMF의 부당한 요구로 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불안심리가 극대화돼 시중의 자금이 몇몇 재벌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를 쫓다보니 금리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금리가 높고 낮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금이 필요한 기업, 특히 중소기업으로 흘러가지 않는데 있다.

^사회 = 참고로 올해 1분기중 도시근로자 소비는 전년동기대비 8.8%, 6월중 설비투자는 52.5% 각각 감소했다.

소위 제2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가.

^루니 = 위기극복에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정부의 개입으로 급락한 환율이 갑자기 가령 1천6백원대로 다시 오른다면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 =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는 말인가.

^루니 = IMF와 외채발행으로 수십억달러가 들어왔고 외채상환기한을 연장함으로써 달러유입을 최대한 허용하고 반대로 달러유출은 최대한 억제했다.

물론 흔히 말하는 직접적인 개입은 아니지만 와환시장을 왜곡시켜 환율이 인위적으로 낮게 결정되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

^함 = 외환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됐는데 시장개입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사회 = 그간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보는가.

15개 종금사의 영업정지, 55개 기업 및 5개 은행의 퇴출은 평가할만 하지 않은가.

^마빈 = 그건 구조조정이 아니다.

공공부문이 부담해야 할 실업문제를 민간부문으로 떠넘기려는 인위적인 노력에 불과하다.

가령 부실은행을 우량은행에 인수시키면 부실은행의 실업은 피할 수 있지만 우량은행의 유동성은 그만큼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빅딜도 마찬가지다.

^사회 = "금융시스템을 희생해서라도 재벌을 살리려 한다 "는 지적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미국도 90년대초 부실은행을 정리할 때도 "죽이기엔 파장이 너무 큰" 은행에 대해선 구제금융을 실시하지 않았나. ^마빈 = 생존능력이 없는 기업 때문에 은행의 생존이 위협받는다면 협조융자는 왜 해주는가.

되갚을 능력이 없는 기업에 추가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다른 기업에 공급해야 할 유동성을 파괴하는 짓이다.

^사회 = 많은 부실기업을 한꺼번에 다 죽일 수는 없지 않는가.

^마빈 = 외환위기이후 주요 재벌계열사중 단 하나도 도산한 예가 없다.

대부분 기업들은 엄청난 신용경색을 겪고 있는데 이들 부실기업에 협조융자.법정관리.워크아웃등의 형태로 추가담보 없이 낮은 금리로 돈이 공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생존능력이 없는 기업이 건강한 경쟁업체들까지 위협하는 것이다.

^함 = 부실기업이 퇴출돼야 한다는데 동감이다.

다만 사업성은 있는데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많다.

이들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조치가 시급하다.

^루니 = 일단 살릴 기업이 정해지고 나면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회 = 상장기업중 39개는 완전자본잠식상태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루니 = 당연히 퇴출돼야 한다.

대만의 경우 해마다 3~4%의 기업이 파산해도 경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사회 = 대기업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누가 어떤 식으로 한보.동아.해태를 문닫게 할 수 있나. 민간기업을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는가.

^마빈.루니 = 신용 (대출) 을 끊으면 된다.

^사회 = 55개기업을 퇴출대상으로 정한 것은 그런 의도라고 생각하는데.

^루니 = 하지만 정부는 해고를 두려워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태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최소한 고용문제에 있어 지난 6개월간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본다.

그런데 중소기업에는 시장원리가 철저히 적용되고 있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사회 = 정부의 방향설정은 옳지 않는가.

^루니 =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달라진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한남투신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함 = 기업구조조정을 가속하되 필요한 유동성은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루니 =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가야할 곳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사회 =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단기적으론 비관적이지만 장기적으론 낙관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마빈 =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본격적인 기업구조조정을 촉발한다면 한국경제는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루니 = 지난 10여년간 경제성장의 내용을 보면 임금이 차지하는 부분은 늘었고 기업의 이익이 차지하는 부분은 줄었다.

기업의 이익창출 노력이 향후 한국경제를 좌우할 것이다.

^사회 = 기업의 투자효율성이 높아져 취업기회를 창출하는 방법은 시간이 걸린다.

당장 현실적인 돌파구는 없는가.

^루니 = 경쟁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문닫는 기업은 없어야 한다.

생존능력이 없는 기업에는 더 이상 신용을 공급하지 말고 오랫동안 무시돼온 중소기업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사회 = 한국주식이 아직도 과대평가돼 있다고 보나.

^루니 = 대부분 한국주식은 수익가치가 전혀 없다.

^사회 = 매출액경상이익률이 10% 이상 되는 기업들도 꽤 있다.

^루니 = 한전이나 포철등 좋은 회사들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현재 주가는 언젠가 이익이 나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해 결정된 투기가치에 불과하다.

^마빈 = 시가총액의 9%를 차지하는 은행이 부실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협조융자를 받은 12개 재벌의 가치도 영 (零) 이다.

이런 몇가지만 반영해도 주가지수는 엄청나게 떨어질 수 있다.

^사회 = 상당수 외국인은 지나치게 조급한 것 같다.

미국을 비롯 과거 경제위기를 경험한 나라들을 둘러보면 위기극복에 최소한 2~3년은 걸렸다.

^마빈 = 연초 4조원이 넘는 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것은 바로 그 낙관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금 실망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투자가들은 지금도 한국정부가 금융 및 기업이 안고 있는 근본문제들에 칼을 들이댄다면 언제라도 투자를 재개할 것으로 확신한다.

*사회=권성철(본사 전문위원.경영학 박사)

*참석자=스티브 마틴(자딘 플레밍 서울지점 이사)

함준호(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제임스 루니(쌍용 템플턴투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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