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대자동차의 잘못된 정리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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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달 이상 끌어 오던 현대자동차 사태는 노사합의 형식으로 종결됐다.

폭력을 동반한 노조의 불법시위, 무기한 휴업으로 대응한 사용자, 그리고 8개 중대의 경찰로 포진한 정부가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험악한 상태였기에 충돌 없이 해결됐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안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태는 경기침체에 따른 대기업의 고용조정과정에서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정이 맞붙은 첫번째 시험장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됐다.

올해 들어 평균가동률이 45%안팎에 이를 정도의 매출부진에 따라 회사측은 당초 전체종업원의 약 40%에 이르는 1만8천명의 과잉인력을 배출해야 하지만 1만여명을 고용조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권고사직과 외주 (外注) 하청의 형태로 각각 1천7백여명을, 그리고 5차에 걸친 희망퇴직형식으로 7천여명을 배출한 터여서 이에 불응한 1천5백여명이 이번 정리해고의 대상이었다.

노조측에서는 한 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버텼으며 사용자는 이를 꼭 실현하고자 한 데서 사태가 발단했다.

36일간의 휴업과 1조6천억원으로 추산되는 직.간접의 경제적 손실을 보면서 정부와 여당의 중재로 2백77명의 정리해고와 나머지 인원의 1년6개월간 무급휴직에 합의한 것이다.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다같이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사용자단체들은 실망과 우려를 표명했고 외국인투자가와 외국언론들도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노사관계 전문가로서는 우선 이번에 합의된 정리해고가 잘못된 관행을 이끌 소지가 많아 지난 2월 도입한 정리해고제도의 앞날을 매우 어둡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에서 정한 정리해고는 네 가지 기본요건에 두 가지 보완요건을 갖추도록 돼 있다.

심각한 경영상의 이유, 해고회피 노력과 공정한 선별기준이라는 세 가지 기본요건은 갖췄으나, 회사측이 노사협의가 아닌 노사합의를 강요받았으며 정부와 여당중재단이 노조의 불법시위를 덮어 버리고 노조의 강요를 사용자가 수용하도록 중재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만약 이번의 해결방법이 선례가 된다면 노사합의가 없을 경우 대기업의 정리해고는 불가능할 것이며 결국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힘들게 될 것이다.

공공부문.공익사업을 포함한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산적한 현실이고 보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일단 해결은 됐으나 그 뒤처리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노.사.정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로서는 2백77명 정리해고자의 저항도 수습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가운데 식당취사원이 1백67명으로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형평을 잃었다는 비판과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용자 역시 정리해고자의 선별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특히 이들 식당취사원이 형평을 잃은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을 할 경우 대응논리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은 정부와 여당이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치논리로 풀었다는 비난이 이미 있는 터다.

더 큰 비난은 정부가 문제해결에 급급해 어렵게 이끌어 낸 정리해고제도를 스스로 유명무실하게 했다는 점이다.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그 후 각 부문에 걸쳐 구조조정을 비교적 잘 추진하고 있다고 봐온 외국인들이 우리 정부의 개혁의지를 의심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사태의 해결과정에서 파생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수습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불법시위에 굴복하고 시장경제를 위한 정리해고를 포기하지 않았나 하고 의심하게 된다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국정지표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영국식 구조조정을 추구하면서 멕시코식 사회적 합의방식을 택해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고자 한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사관계정책의 기본방향을 신중히 재고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른 것 같다.

박래영(홍익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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