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 옴부즈맨칼럼]'드러지 리포트'심층설명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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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이른바 섹스 스캔들과 관련해 인터넷신문 '드러지 리포트 (Drudge Report)' 가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주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대배심에 증언한 후 대 (對) 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을 때 맸던 넥타이가 사실은 르윈스키가 클린턴에게 선물한 것이었다는 드러지 리포트 보도를 미국 주요 매스컴이 모두 인용했을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유수한 신문들도 거의 예외없이 드러지 리포트를 인용했다.

한데 도대체 '드러지 리포트' 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찌된 연유로 그토록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신문은 없었다.

그러나 독자의 처지에서 뿐만 아니라 신문기자 처지에서 보더라도 그런 것에 대한 설명은 단순한 궁금증 해소의 차원을 넘는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야흐로 드러지 리포트는 두가지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하나는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관한한 어떤 매스컴보다 앞선 보도로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인터넷신문으로서의 드러지 리포트는 이른바 '미디어혁명' 의 기폭제라고까지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드러지 리포트가 뜨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부터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분명 르윈스키와 불륜 (不倫) 관계를 가졌으며 그것을 고백한 테이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 바로 드러지 리포트였다.

이것을 워싱턴 포스트가 1면 기사로 다루자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다.

이에 그치지 않고 드러지 리포트는 르윈스키가 클린턴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드레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미국 조야 (朝野) 를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클린턴이 르윈스키로부터 받은 애정표시의 넥타이 선물은 모두 6개며 그 첫번째의 선물을 대국민 사과성명 때 맸다고까지 지적했다.

기존의 신문이나 통신, 나아가서는 TV까지도 제치고 드러지 리포트가 특종보도에 앞선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것은 우리나라의 매스컴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많은 것들을 시사해 주고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드러지 리포트가 신문기자 경력이 전혀 없는 31세의 매트 드러지 (Matt Drudge)에 의해 완전히 컨셉트 (Concept) 를 달리해 창안,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드러지는 스스로 취재하거나 취재일선에 나서는 일이 없다고 한다.

다만 컴퓨터 앞에 앉아 홈페이지에 접속된 수많은 무명 (無名) 의 정보원 (情報源) 을 바탕으로 뉴스를 새로 써서 온라인에 올릴 뿐이라는 설명이다.

오늘날 드러지 리포트 앞으로는 가십성 이야깃거리부터 극비 (極비) 정보에 이르기까지 하루평균 1천건의 기사가 들어오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드러지 리포트를 애독하는 접속건수는 이미 하루 50만건의 기록을 깼다는 소식이다.

인터넷신문 드러지 리포트는 독자가 자유롭게 정보를 읽고 또 보내기도 하는 이른바 쌍방향 (雙方向) 적인 정보의 흐름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데 이런 인터넷신문의 발전상은 적어도 우리에게 두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는 신문이 기존의 컨셉트 내지는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기술발전의 '하드' 와 '소프트' 에 동시적인 접근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클린턴 스캔들을 다루는 미국의 특별검사나 매스컴의 보도태도는 우리에게 이른바 '개혁' 이라는 차원에서도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신문이 권력형 비리에 대해 미국처럼 끈질기게 추적.보도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우리나라의 사정기관이 미국처럼 독립적으로 철저히 수사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만약' 이라는 가정법 (假定法) 이 법률이나 제도의 차이 앞에서는 해법 (解法) 으로서의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에선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란 바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이규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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